대북 제재 감시하는 유엔 전문가 패널, 러시아 거부권 행사에 해산

안보리 산하 대북제제위원회 전문가 패널 임기 연장 결의안 부결 
중국, 북·러 공조 강화, 미·중 패권 경쟁 등 고려해 표결에서 기권
유엔 "패널 해산에도 대북제재위는 존속, 제재 감시는 계속할 것"
북한유엔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엔(UN)의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가 오는 4월 30일자로 종료된다.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은 북한의 제재 이행을 감시하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번 안보리 회의에 상정된 임기 연장안이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되면서 15년 간의 활동을 끝마치게 됐다.

대북제제위 전문가 패널, 2009년 출범 후 15년 만에 활동 종료

28일(현지시간) 유엔 안보리는 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의 임기 연장 결의안을 표결에 부쳤지만 부결됐다고 밝혔다. 결의안이 통과하려면 안보리 이사국 15개국 중 9개국 이상이 찬성하고, 미국·중국·러시아·영국·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 중 어느 한 나라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번 회의에서는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거부권을 행사했고 중국은 표결에서 기권했다. 두 나라를 제외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한국, 일본 등 나머지 13개국은 모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제재위원회는 지난 2006년 북한의 제1차 핵실험에 대응해 안보리 결의 제1718호에 따라 유엔 산하기구로 설립됐다. 이후 2009년 북한이 제2차 핵실험을 단행하자 안보리는 제1,874호 결의를 통해 화물·해상 검색 강화, 무기금수 조치 확대, 금융·경제 제재 강화 등 강력한 추가 제재 조치를 시행하고 대북제재위원회를 보조해 북한의 제제 위반 행위를 조사하는 전문가 패널을 출범하기로 했다. 그동안 안보리는 매년 3월경 회의를 열어 전문가 패널의 임기를 1년씩 연장하는 결의안을 채택하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8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패널은 유엔 회원국으로부터 북한의 제재 조지 이행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는 등 북한의 위반 사례를 조사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매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의 제재 위반과 관련한 보고서를 대북제재위원회에 제출한다. 이달 초 제출한 보고서에서는 북한이 사이버 공격을 통해 핵 무기 개발 자금 30억 달러를 조달한 정황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상임이사국 러시아, 北과의 무기 거래에 ‘대북제재 위반’ 지적

외교가에서는 러시아가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대량으로 들여오는 등 군사적 연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전문가 패널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지자 거부권을 행사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북한과 러시아 간의 무기 거래를 두고 무기 금수를 결정한 유엔의 대북제재 조치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이번 부결 결과를 두고 한국을 비롯해 미국 등 주요국들은 러시아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로버드 우드 유엔 미국 대표부 차대사는 “상임이사국이 안보리의 대북제재 조치를 훼손하고 위반 행위를 감독하는 기구까지 없애려 한 행위에 매우 실망했다”고 지적했다. 황준국 유엔 대사도 표결 직후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이 진척되고 있는 상황에서 터무니없고 충격적인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우리 외교부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대다수 이사국의 압도적 찬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로 부결됐다”며 “유엔의 제재 레짐과 안보리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크게 훼손시키는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규탄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전문가 패널의 존속과 상관없이 대북제재위원회는 지속되며 제재 이행을 감시하는 역할을 여전히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서는 “5개 안보리 상임이사국은 자신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선 유엔 사무총장이 관여할 역할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북제재위원회 의장국인 스위스의 파스칼 베리스빌 유엔대사도 기자회견을 열고 “대북제재는 그대로 남아 있으며 위원회는 제재 이행을 위해 독립적인 전문가의 분석과 지원을 받을 수 있으므로 대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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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 북핵 우려하면서도 한·중·러 관계에서 동북아 안정 희망

다만 이번 표결에서 거부권이 아닌 기권표를 행사한 중국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북한 문제에 있어 러시아보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핵 문제를 미·중 관계에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란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일찍이 중국은 대북 제제를 비롯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과 거리를 유지해 왔다. 미·중간 패권 경쟁이 심화된 2022년부터는 미국이 대중국 기조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떠한 공조에도 협력하지 않겠다며 각종 규탄과 제재 논의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중국은 북한의 제재 위반 행위를 방조 혹은 방관하며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에 동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은 선박 20척 이상을 사들였고 상한선을 초과한 정제유를 불법적인 경로를 통해 반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수백만 달러어치의 주류를 수입해 유엔 안보리의 사치품 수입 규정을 위반했다는 논란까지 일고 있다. 국제사회는 최근 크게 늘어난 북한의 대북제재 위반이 중국 정부의 묵인 혹은 느슨한 단속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히려 중국은 한국, 북한, 러시아 사이에서 동북아 질서의 안정을 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외교에서 러시아는 최상위에 놓인 국가로 평가받는다. 양국 간 협력의 범위는 경제와 민간을 넘어 군사안보에 이르는 고차원적이고 광범위한 영역을 아우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중국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유일한 국가로 62년째 이어온 북중우호전략에 따라 긴밀한 ‘혈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중국은 북·러 연대에 대해서는 다소 거리를 두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 러시아와 달리 한국과는 강한 경제적 협력 관계, 이른바 ‘전면합작파트너’ 관계를 맺고 있으며 북한 혹은 북핵 문제에서는 협력이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거나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다. 북핵을 인정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나아가 대만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중국이 가장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다. 또한 북한 경제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사실상 대북 제제의 90% 이상을 중국이 부담해야 하는데 현재 북·중간 교역은 유엔이 허가한 교역량에도 미치지 못해 중국의 입장에서 대북제재는 사문화된 것이나 다름 없다. 오히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의지가 확고하고 북·러 연대가 가시화된 시점에서 사실상 비핵화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로 보고 실리와 명분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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