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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이사 축출하고 지분 매각 요구, 일본의 ‘라인 뺏기’ 본격화

일본 정부의 공격적 '네이버 지우기'
일본 디지털화 앞장섰는데, "지분 팔아라"
우리 정부는 어디에, 수수방관 대응에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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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가 13년 동안 성장시킨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이 일본 기업화가 될 위기에 처했다. 라인야후가 지난해 정보 유출 사건을 빌미로 사실상 네이버 지우기를 본격화하면서다. 라인의 모든 것을 만든 신중호 CPO(최고제품책임자)를 이사회에서 축출하고, 모회사 A홀딩스의 지분 매각을 요구하는 등 일본 정부와 소프트뱅크에 이어 라인야후까지 전방위로 네이버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정부는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어 비판이 거세다. 

라인야후의 유일한 한국인 ‘신중호 CPO’, 이사회서 축출

이데자와 다케시 라인야후 CEO(최고경영자)는 8일 열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보안 거버넌스를 개선하고 강화하기 위해 사내이사를 1명 줄이고 사외이사를 늘려 독립적인 경영체제를 갖춘다”며 “신중호 CPO는 이사회에서 배제되지만 CPO 역할과 라인 서비스에 집중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네이버에 위탁해 온 서비스들을 순차적으로 종료할 예정으로, 기술적인 독립을 추진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라인야후는 올해 150억 엔(약 1,319억원)을 들여 그동안 네이버 클라우드에 위탁해 온 IT 서비스 인프라를 별도로 구축할 계획도 밝혔다.

아울러 이데자와 CEO는 네이버에 A홀딩스의 지분 매각을 요청했다고도 전했다. 라인야후가 네이버의 지분 매각을 공식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일본 정부의 ‘자본관계 재검토’ 행정지도에 대해 언급하며 “네이버로부터 자본적인 지배관계를 받으면서 위탁관리 사항을 강하게 요구할 수 있겠느냐는 게 총무성의 행정지도가 내준 과제”라며 “종합적인 판단 아래 위탁처(네이버)에 자본관계의 변경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소프트뱅크와 네이버가 협의 중이며, 구체적으로 언급하진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발표와 동시에 일본 국민 메신저 라인 개발을 주도해 ‘라인의 아버지’로 불리는 신중호 CPO는 사내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유일한 한국인인 신 CPO가 물러남에 따라 라인야후 이사회 전원은 일본인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이를 보면 라인야후가 ‘네이버 지우기’에 나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결국 일본 정부의 압박에 라인야후가 굴복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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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정보 유출 땐 제재 無, 사실상 ‘네이버 영향력 차단’ 의도

이번 사태의 발단은 지난해 11월 네이버 위탁업체의 서버 해킹으로 발생한 라인야후의 52만 건 개인정보 유출 사고다. 이에 일본 총무성은 네이버 클라우드의 유출 책임을 이유로 지난해와 올해 2차례에 걸쳐 네이버와 맺은 지분 관계를 재검토하라는 행정지도 처분을 내렸다. 라인야후가 위탁계약 축소 등 재발 방지책을 내놨음에도 2차 행정지도를 통해 소프트뱅크가 네이버 지분을 추가 매입해 경영권을 장악하도록 압박한 것으로,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 정부는 지난해 10월 자국 대표 통신사업자 NTT니시일본에서 개인정보 928만 건이 유출된 사건에 대해서는 위탁업체 관리감독 등 재발방지책 수용에 그쳤다. 심지어 소프트뱅크를 통해 개통된 일본 국회의원 휴대전화 해킹 사건에 대해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21년 42만 명의 페이스북 이용자 정보가 빠져나갔을 때도 일본 정부는 메타에 지배 구조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현지 업계에서마저 틱톡에 대한 미국의 대응과 유사하다면서도 중국과 미국은 적대 관계지만 한국과 일본은 우방국인 점을 감안하면 일본이 라인에 내린 조치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본 정부가 현지 언론들까지 ‘이례적 행정지도’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형평성에 어긋나는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유출 사건 당시 라인의 서버가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일본 국민의 감정선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간 일본에선 라인을 일본 서비스로 생각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시를 기점으로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이 각인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문화가 팽배한 탓에 디지털전환(DX)에 뒤처졌던 일본 정부나 지자체의 행정 업무를 라인이 대신해 왔던 터라 사실상 공적 임무를 수행하는 국민 메신저가 한국 기업에서 출발했다는 점은 일본의 숨기고 싶은 약점처럼 여겨졌을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라인의 초기 개발부터 현재 서비스 관리까지 총괄하는 신중호 CPO의 이사회 축출, 네이버 클라우드에 위탁하던 서비스 계약의 조기 종료에 이어 네이버의 A홀딩스 지분까지 매각을 요청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라인야후에 드리워진 네이버의 영향력을 철저히 차단하기 위한 밑그림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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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 “네이버 판단이 가장 중요” 뒷짐

현재 라인야후 주식은 네이버와 소프트뱅크가 설립한 합작법인인 A홀딩스가 64.4%를 보유하고 있다. 소프트뱅크와 네이버는 라인야후의 중간 지주회사에 해당하는 A홀딩스에 각각 50%씩 출자하고 있어 두 회사가 실질적인 모회사다. 그런데 지금 소프트뱅크는 A홀딩스 주식을 인수해 라인야후의 독자적 대주주가 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만약 네이버가 일본 정부 압박에 의해 지분을 1%라도 매각할 경우 13년간 공들인 라인의 경영권은 소프트뱅크에 넘어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신중론을 펼치며 뒷짐만 지고 있는 모양새다. 이날 라인야후의 간담회 직전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네이버가 중요하고 민감한 경영적 판단을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정부가) 끼어들면 문제가 될 수도 있다”며 “정부는 굉장히 신중하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네이버도 이 문제와 관련해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일각에서는 정부가 일본 눈치를 살피는 것이 아니냐는 여론이 확산하고 있다. 해외 진출 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좀 더 적극적이고 강력한 개입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가 현재 상황에 일부 원인 제공을 했다는 지적도 있다.

라인 사태가 원만하게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제2의 독도 사태’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민단체 ‘IT 공정과 정의를 위한 시민연대’ 준비위원회는 “네이버가 이번 사태 대응에 실패하고 소프트뱅크에 백기 투항한다면 향후 두고두고 네이버는 ‘친일 기업’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13년간 피땀 흘려 일군 기업을 상대 국가의 압력에 굴복해 넘겨준다면 이를 환영할 국민은 없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라인야후에 대한 지배력 약화는 네이버에 있어 크나큰 손실이다. 라인은 네이버가 내수 꼬리표를 떼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글로벌 사업으로 이미 대만과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2억 명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하고 있는 등 상당한 입지를 다졌다. 글로벌 시장 공략이 무엇보다 중요한 네이버엔 라인이 아시아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인 셈이다. 이런 와중에 라인야후 지분이 넘어갈 경우 글로벌 확장 전략에 차질이 빚어짐은 물론 사업 근간이 흔들릴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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