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품의 ‘늪’ 빠진 쇼핑 플랫폼들, 상황 심각한데 법안 논의는 ‘지지부진’하기만

부정 수입물품 ↑, 관세청은 ‘속수무책’ “가품 관리하겠다”는 플랫폼들, 하지만 제재 논의 부진한 韓, 법안마저 국회 ‘계류 중’

중국의 스포츠 브랜드 짝퉁 상품들/사진=바이두

관세청이 올해 상반기 온라인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반입하려 한 부정 수입물품 약 200만 정(300억원 상당)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가품 논란이 거듭 불거지자 일각에선 온라인 쇼핑 플랫폼에 대한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국회 차원의 논의는 지지부진하기만 하다. 여기에 업계 차원의 반발까지 더해지며 정부도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관세청, 부정 수입물품 200만 정 적발

관세청이 이번에 적발한 주요 부정 수입물품은 ▲유명상표를 위조한 가방, 의류 등 지식재산권 침해물품 ▲식품위생법, 수입식품법 등의 수입요건을 구비하지 않은 다이어트제품 등 식품류 ▲전기용품안전관리법, 전파법 등의 수입요건을 구비하지 않은 어댑터 등 전기용품류 등이다. 적발된 부정 수입물품은 주로 개인 간 거래가 이뤄지는 오픈마켓(39%)이나 SNS(30%) 등에서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세청은 지난 2020년부터 통신판매중개업자를 대상으로 ‘부정 수입물품 유통실태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통신판매중개업자의 ▲사이버몰 등록정보관리 실태 ▲부정수입물품 유통 방지를 위한 인력·기술·체계 ▲부정수입물품 유통에 대비한 소비자 보호 제도 등에 대한 사항을 확인함으로써 온라인상 부정 수입물품의 유통을 방지하고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겠단 취지다.

특히 올해는 주요 부정수입물품 유통처가 오픈마켓인 점을 고려해 기존의 11번가, 네이버, 옥션, 위메프 등 중·대형 오픈마켓 외에도 명품류, 인테리어 제품 등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통신판매중개업자까지 조사 대상을 확대할 방침이다. 보다 넓은 범위에서 부정 수입물품을 관리하겠단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끊이지 않는 가품 논란

다만 관세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쇼핑 업체 내에서의 가품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온라인 쇼핑 업체의 관리 소홀 아래 적잖은 가짜 상품이 진품으로서 판매되고 있는 것이다. 상품이 가품으로 확인된다 하더라도 환불조차 어렵다. 판매자 측 주소가 중국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은 데다 환불 처리 비용이 상품 구매 비용보다 더 많이 들기 일쑤기 때문이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특허청이 적발한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 위조상품 건수는 쿠팡이 2만6,201건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는 네이버(1만8,480건), 11번가(4,739건), 티몬(167건) 등이 이었다. 대형 업체들마저 가품의 늪에 빠져들었단 의미다.

이런 가품 구매 피해가 소비자 피해 구제로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3년간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쇼핑몰 가품 소비자 피해 구제 접수는 120건에 그쳤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품인지 진품인지 입증하는 게 굉장히 어려운 데다 절차 진행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돈 날린 셈’ 치는 소비자들이 많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몰들은 가품 보상제 시행, 모니터링 전담 조직 강화 등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강조했으나, 실상 바뀐 건 없었다. 이에 일각에선 온라인 쇼핑몰들이 통신판매중개자로 분류돼 법적 처벌을 받지 않는 점을 비판하며 “온라인 쇼핑몰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정부와 온라인 쇼핑몰이 긴밀한 협의 및 적극적 노력을 통해 피해 소비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출처=특허청

‘K-브랜드 위조상품 대응 강화 방안’ 내놨지만

이에 실제 특허청은 ‘K-브랜드 위조상품 대응 강화 방안’을 통해 상표법을 개정하고 온라인 쇼핑몰에 △위조상품 발견·신고 시 판매 중단 조치 의무 부여 △조치의무 미이행 시 침해책임 규정 등 책임 강화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국내외에서 우리기업의 K-브랜드 위조상품 피해대응 업무를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산업재산권 보호 관련 장(章)을 신설하는 등 발명진흥법 개정도 추진했다.

기존에는 가품 판매자를 상대로 소비자가 소송을 진행할 경우 위반 자료를 확보하지 못해 불리했는데, 해당 법인이 통과되면 플랫폼 측의 책임이 강화돼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법원의 입장도 조금씩 바뀌고 있어 전망이 밝다. 과거 한 상표권자가 오픈마켓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 구체적 거래에 관여하지 않는 이른바 오픈마켓 운영자도 상표권 침해 게시물에 대한 불법행위에 책임이 있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법원은 특히 △오픈마켓 운영자가 제공하는 인터넷 공간에 게시된 상품의 상표권 침해가 명백한 경우 △상표권 침해 피해자로부터 게시물 삭제 요구를 받거나 게시물이 게시된 사정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경우 △게시물에 대한 관리 및 통제가 가능한 경우 등에 대해 플랫폼 운영자는 해당 게시물을 삭제하고 상품 판매 중단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를 방치할 경우 부작위에 의한 방조자로서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오픈마켓 운영자에게 조치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다만 여전히 일반 플랫폼과 달리 오픈마켓사업자는 구체적으로 가품을 인식한 경우에만 해당 사항이 있어 한계가 명확하단 지적이 나온다. 정책 기조가 여전히 ‘자율규제’에 머물러 있어 독점적 지위를 지닌 플랫폼의 행보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단 비판도 적지 않다.

美·유럽은 ‘강력 제재’ 이어가는데, 韓은?

이에 반해 미국과 유럽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을 통해 불법 거래가 기승을 부리자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규제를 단단히 정비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앞선 지난 2월 미국 의회는 가품을 판매하는 오픈마켓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른바 ‘샵 세이프(Shop Safe)’ 법안인데, 아마존·이베이 같은 오픈마켓에서 판매자가 가품을 유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련의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법안의 골자다. 법안에 따르면 오픈마켓은 판매자가 제품을 등록하기 전 가품 여부를 검증하기 위한 기술을 사용해야 하고 가품 거래에 연루된 판매업자는 세 번 이상 적발되면 퇴출된다.

유럽은 미국보다 더 강력한 제재를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유럽 최고 사법기구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아마존에서 가품이 유통됐을 때 오픈마켓 또한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ECJ는 “일반 소비자들의 경우 개별 판매자가 아니라 아마존이라는 플랫폼을 보고 구입하기 때문에 이들을 믿고 구입하고 있다”며 오픈마켓에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특히 아마존이 해당 모조품 판매업체 중 일부의 상품을 보관하고 고객에게 배송하는 부분에서 책임 소지가 명확하다고 봤다.

우리나라는 현재 공정위가 온라인 플랫폼에 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논의하고 있다. 플랫폼에서 제공되는 상품 정보의 진위와 하자 및 가품 여부를 확인할 책임이 오픈마켓 사업자에게 있다는 판단 아래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상품에 관리 책임을 부여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혔다. 그러나 정부의 노력과는 별개로 제도 개선은 여전히 요원하다. 오픈마켓 피해를 줄이기 위해 각종 법률 개정안이 상정돼 있지만 논의 조차 시작하지 않고 폐기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플랫폼 업계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육성 차원에서 지나친 규제는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업계가 들고 일어선 것이다. 정부가 유통 시 처벌 및 수입 장벽 강화 등 강력한 억제안을 내놓기 어려운 환경이 형성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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