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 13년 만에 축소, 허리띠 졸라매는 尹 정부

윤석열 정부가 내년 예산안 총지출 규모를 올해보다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위기와 경제 둔화 대응 과정에서 악화되고 문재인 정부 시절 급격히 확장된 재정을 정상화시키겠단 취지다.

9일 정부부처 등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재정 기조를 확장재정에서 건전재정으로 전환하고 내년도 예산안부터 이를 바로 적용키로 했다. 기재부는 내년도 예산을 올해 본예산(607조 7,000억 원)보다 많고 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올해 총지출(676조 7,000억원)보다 작은 규모로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새 정부 긴축 재정 기조에 따라 내년 본예산 규모는 올해 2차 추경을 포함한 총지출보다 적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방안이 확정될 경우 내년 예산은 올해 추경예산 대비 30조 원 이상 줄어든다. 정부의 목표 대로라면 내년 예산은 13년 만에 전년도 예산보다 축소된다. 정부 역사상 지출 예산이 전년 대비 줄어든 건 2010년 단 한 번 뿐이었다.

올해 본예산 지출은 지난해보다 8.9% 증가했다. 윤석열 정부가 ‘긴축 재정’을 예고한 만큼 내년 지출 증가율을 5~8%로 결정할 경우 내년 본예산 규모는 638조~656조 원 수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재부는 지난해 ‘2021~2025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 올해 지출 증가율 5.0%로 제시했던 바 있다. 올해 예산 대비 내년 예산 증가율을 5%대까지 낮추겠단 것이다. 과거 정부의 본예산 증가율은 이명박 정부 5.9%, 박근혜 정부 4.0%, 문재인 정부 8.7%였다.

기재부의 방침대로라면 윤석열 정부가 처음 짜는 내년도 예산은 문재인 정부 때보다 증가율이 훨씬 낮아지고 이명박 정부 때와 비슷한 수준이 된다.

이처럼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가 확장 재정 기조를 유지하며 나랏빚이 빠르게 늘어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2017년 국가채무는 660조 2,000억 원이었으나 2018년 680조 5,000억 원, 2019년 723조 2,000억 원, 2020년 846조 6,000억 원, 2021년 967조 2,000억 원까지 늘었다.

올해엔 나랏빚이 1068조 8000억 원까지 불어날 전망이 나왔으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17년 36.0%에서 올해 49.7%로 상승하게 됐다. 이 기간 동안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1.0%에서 올해 5.1%까지 오르며 크게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전부터 재정 건전성을 강조해왔다. 윤 정부는 당장 내년 예산부터 재정 기조를 ‘긴축 재정’으로 전환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겠다는 구상이다.

우선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비율을 -3% 이내로 개선하고 2027년 국가채무비율을 50% 중반 수준을 유지할 예정이며, 지난 5년간 국가채무비율 증가 폭(14.1%p)도 3분의 1 수준인 5~6%p로 축소할 방침이다.

운 대통령은 지난달 7일 ‘2022년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탄탄했던 재정이 국가신인도에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지적받을 상황이 됐다”라며 “국가채무 증가 규모와 속도 모두 역대 최고 수준인 재정 여건 속에서 민생 현안과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부터 솔선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라고 강조했던 바 있다.

이에 정부는 강도 높은 지출구조조정을 강행할 예정이다. 저성과·관행적 보조사업을 정비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한시적으로 크게 늘어난 각종 지원 사업을 정상화하겠단 것이다.

지출구조조정 규모는 당초 10~12조 원 정도를 고려했으나 이보다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12조 원 규모의 지출 구조조정 만으로는 건전재정이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가 내년 예산안을 올릴 때 올해 예산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하라고 주문했다. 당초 정한 지출 한도 외에 추가 예산 요구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신규 사업 예산이 필요하면 기존 사업에 투입할 예산을 깎겠다는 방침도 전했다.

저성과·관행적 보조사업을 정비하고 코로나19 확산으로 한시적으로 크게 늘어난 각종 지원 사업을 정상화할 계획도 마련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폭 확대된 현금성 지원 사업들은 대폭 정리한다. 윤 정부는 1차적으로 1205개에 달하는 민간 보조사업 가운데 61개 사업은 폐지하고, 191개 사업은 감축을 추진할 방침이다.

2020년부터 2025년까지 국비 114조 원을 투입하기로 했던 한국판 뉴딜 사업과 지역화폐(예산 6000억 원)도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다. 기재부가 전체 예산을 늘리지 말고 전 정부 정책에 투입되던 예산을 줄여 새 정부 국정과제 중심으로 예산을 짜라는 요구를 함에 따라 시급성이 떨어지는 정책을 구조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잘 사용하지 않는 국가 보유 토지·건물은 최대한 매각해 재정에 보태기로 했다. 정부는 이날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 주재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어 5년간 16조 원+α 규모의 국유 부동산 매각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처럼 새 정부가 임기 첫해부터 지출 구조조정에 나선 것은, 급속도로 악화되는 재무상태를 방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 일자리 창출 및 복지 확대 등을 위해 공격적인 확장재정 기조를 이어왔고, 그 결과 국가채무는 단 5년 만에 400조 원이나 증가했다.

이에 기재부 내에선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263%에 이르다 보니 역대급 엔저에도 이자 부담 때문에 기준금리를 못 올리는 일본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았다.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한번 늘어난 재정지출은 줄이기 어렵고 늘어난 빚 때문에 모든 정책이 무력화되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윤 정부는 지난 7월 초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올해 5.1%인 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3% 이내로 낮추고 현재 50% 수준인 국가채무 비율을 2027년까지 50%대 중반으로 억제하기로 했던 바 있다. 이를 위해선 내년에만 재정적자를 40~50조 원 줄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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