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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SK 법인세 ‘제로’에 국세 수입 흔들, “고질적인 반도체 의존부터 해결해야”

1분기 국세 수입 2조원 넘게 감소, 법인세는 5조5,000억원 줄어
변수도 산재, 유류세 인하 조치 연장 역시 불안정성 높이는 요소
이번에도 '반도체 착시'가 문제? "수입 다변화 등 장기적 대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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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분기 국세 수입이 지난해 동기 대비 2조원 넘게 줄었다. 법인세는 부진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한 푼도 내지 못하면서 전년 동기 대비 5조원 넘게 급감했다. 이에 시장 일각에선 한국의 지나친 반도체 의존도가 다시 한번 발목을 잡은 셈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착시를 잡기 위한 장기적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거듭 쏟아진다.

국세 수입 2.5% 감소, 삼성·SK 부진이 원인

지난달 30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국세 수입은 1분기 84조9,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조2,000억원(2.5%) 감소했다. 예산 대비 진도율은 23.1%로 집계됐는데, 이는 최근 5년 평균(25.9%)보다 2.8%p 낮은 수치다. 국세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득세와 법인세가 쪼그라든 탓이다.

12월 결산법인은 일반적으로 다음 해 3월 법인세를 납부하는데, 올해 3월 걷힌 법인세는 18조7,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5조5,000억원(22.8%) 줄었다. 법인세의 예산 대비 진도율은 24.1%로, 지난해(30.2%)보다 낮을뿐더러 최근 5년 평균(29.6%)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작년 기업들의 영업이익이 전년보다 코스피 상장사는 45.0%, 코스닥 상장사는 35.4% 줄어든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법인세 비중이 큰 대기업이 영업손실로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한 것도 법인세 감소의 주요한 원인이다.

소득세 수입도 27조5,0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7,000억원 줄었다. 고금리로 이자소득세가 증가했지만 주요 기업 성과급이 줄면서 근로소득세가 감소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기재부 자료를 살펴보면 부가가치세는 신고납부 증가, 환급 감소 등에 따라 작년보다 22.5% 증가한 20조2,000억원 걷혔고, 주식 거래대금 증가로 증권거래세도 2,000억원 늘었다. 반면 근로소득세는 16조8,000억원 걷혀 작년보다 1조7,000억원 줄었고 부동산 증여 거래가 줄면서 상속·증여세도 3,000억원 덜 걷혔다.

각종 변수에 세입 불안도 가중

문제는 앞으로의 경기다. 기재부에 따르면 2024년 3월 산업생산은 전월 대비 -2.1%를 기록했다. 5개월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이자 4년여 만의 최대 낙폭이다. 정부는 1분기 GDP에 3월 생산 수치가 반영됐다는 입장이지만 최근의 경기지표가 나빠졌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고물가와 환율 변수로 경기회복세가 더뎌지면 소득세와 부가가치세 세입도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 정세 급변으로 유류세 인하 조치가 6월 말로 연장된 것도 악재다. 당초 세제당국은 유류세 인하 조치가 오는 4월 말 일몰될 것으로 예상하고 올해 세입 전망을 짰다. 세제당국은 오는 7월부터는 유가 변동 상황을 고려해 유류세 인하 조치가 ‘원상복구’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불확정성이 가중된 만큼 시장 불안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선이다.

이 같은 불안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게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에 대한 기재부의 태도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추경예산안 편성 요구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국 성장률 전망 등에 비춰보면 현재 재정은 경기침체 대응보단 민생에 할애돼야 한다는 게 이유인데, 시장에선 “기재부의 추경 및 지원금 반대에 세수 펑크에 대한 위기의식이 깔려 있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가의 한 관계자도 “최근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공약에 대해서도 재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면서 “이 상황에서 세수까지 부족하다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가 늘어남은 물론 국가부도라는 이야기까지 나돌 수 있는 점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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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의존도 가시화, “착시부터 걷어내야”

이처럼 국세 수입 부족이 가시화하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의 고질적인 반도체 의존도가 다시 한번 발목을 잡은 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한국의 경제 위기 뒤엔 대부분 반도체 업계 불황이 있었다. 2010년 7월 반도체 재고는 전년 동기 대비 69.4%p 늘었고, 반도체 가격도 하락세를 이루면서 경기가 흔들렸다.

2017년엔 ‘반도체 착시’가 재계에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기도 했다. 반도체 착시란 대다수 산업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음에도 반도체가 나 홀로 대규모 호황을 누리는 덕에 경제 전체가 문제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을 뜻한다. 실제 당해 국내 상장사 650여 곳의 영업이익은 78조원으로 전년 66조원 대비 18% 늘었으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한 기업의 영업이익은 동기간 50조원에서 48조원으로 줄었다. 두 반도체 거물만 반년간 영업이익이 16조원에서 30조원으로 87% 뛰었던 것이다.

한국의 반도체 의존도를 보다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는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다. 앞서 1993년~1994년 PC 운영체제로 윈도95가 도입되면서 반도체 시장은 대호황을 맞았다. PC 보급 증가와 기존 PC의 메모리 업그레이드가 맞물리면서다. 당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선 4Mb D램에서 16Mb D램으로의 세대교체가 진행됐고, 이에 따른 반도체 호황은 한국의 경제성장률을 기하급수적으로 끌어올렸다. 1990년대 초 6% 안팎이던 경제성장률이 1995년 들어 8.9%로 치솟은 것이다.

그러나 주력 품목이던 16Mb D램 가격은 1996년 들어 폭락했고, 반도체를 대체할 수출 품목이 없던 한국 경제는 한순간 침체에 빠졌다. 경제성장률도 1996년 들어 7.2%로, 1997년 5.8%로 떨어졌다. 국세 수입 부족을 단기적 해결 과제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 거듭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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