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공천전략 특집 ④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수준을 높이려면?

비례대표 의원 재선 성공률 10% 미만, 현격히 떨어지는 생존율 초선 비례대표 의원 시절부터 정치적 전문성 쌓아 올려야 비례대표 공천 과정 투명성 제고해야 국민 신뢰 얻고 운용 가능해

비례대표 공천은 정당 민주주의의 ‘꽃’에 해당한다. 당의 이미지나 지향점을 대표하는 후보자들로 비례대표 명단을 완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 성공률은 10%에 그친다. 절반 정도가 살아남는 지역구 초선의원보다 현격히 생존율이 떨어지는 것이다. 애초에 공천 시 선거 경쟁력을 고려하기보다는 참신하고, 당의 컬러에 맞으면서, 홍보 효과가 있거나 전문성을 갖춘 인물을 공천하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의원 재선 성공률 희박, 일종의 소모품처럼 쓰이고 버려진다 

비례대표 의원들이 일종의 ‘소모품’처럼 소비되고 다음 임기가 되면 국민에게 외면받는 현실은 반드시 개선돼야 하는 부분이다. 이들을 장기적으로 지역구 선거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뛰어난 정치 인재로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정당들이 취해야 하는 노선이다.

나경원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제기한 바 있다. 비례대표 의원 출신이지만 이후 지역구에서도 3번 당선돼 4선 의원의 고지에 올랐던 나 전 대표는 지난 지방선거 기간에 “우리 당에서 여성 정치인은 항상 이용당하기만 했다”며 “(내가) 4선 의원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 비례의원들이 왔다가는 걸 봤겠나. 우리 당에서는 민주당과는 달리 여성을 험지에 내몰고 구색만 맞췄다”고 주장했다. 나 의원의 발언은 사실일까.

‘여성’에 한정하지 않고 비례대표 의원 전체로 확대할 경우에 한해,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원들의 생존을 위한 배려를 많이 한다는 나 전 원내대표의 주장은 사실에 가깝다. 19대 국회에서 20대 국회로 바뀔 당시, 비례대표 의원은 새누리당이 0명, 더불어민주당은 6명이 생존했다. 각각 0%와 30%다. 18대 국회에서 19대 국회로 전환될 때도 비슷했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의 생존율은 7%, 민주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의 생존율은 30%였다.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 확률이 보수정당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 확률보다 유의미하게 높다.

사진=유토이미지

비례대표 의원 질적 성장 촉진해야 국가적 자원 낭비 막는다

왜 굳이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 확률을 당 차원에서 노력해서 높여야 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반박이 가능하다. 첫 번째, 비례대표 의원들도 충분히 지역구에서 생존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퍼져야 비례대표에 대한 부정적인 국민 인식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구 협상 때 매번 합구되는 지역구를 없애지 않기 위해 비례의석을 매번 줄이는 행태가 반복되는데, 본래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헌법 원리에 규정돼 있는 개념이기에 함부로 줄여서는 안 된다. 비례대표제의 성공적인 운용을 위해선 적당한 수의 비례대표 의원의 숫자 확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선 의원의 질 자체를 끌어올려야 한다.

두 번째, 초선 비례대표 의원들에게 부여되는 수많은 의원 특혜와 의정활동 경험들은 4년간의 국회 임기 동안 단순히 소모되기보다는 다음 임기까지 연속성을 가지고 해당 의원의 역량으로 쌓이며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활용돼야 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신입사원 교육을 비싼 돈 들여, 심지어 세금까지 써가며 시켜놨는데 4년 후 10% 정도를 제외하고 전원 해고된다면 그만큼 낭비적인 투자가 어디 있겠는가. 초선 비례대표 의원 시절부터 정치적 전문성을 차근차근 쌓아 올린 의원들이 다선 의원이 되는 일이 늘어야 국가적 자원 낭비가 적어진다.

물론 비례대표 의원들의 재선 확률이 낮은 것은 의원 본인들의 노력이나 자질 부족에서 기인하는 측면도 크다. 실제로 경합지나 험지를 미리 선택해 임기 초반부터 공략하거나 지역구에서의 지지세를 다지기보다는 양지 공천만 노리고 당내 정치로 해결해보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전희경 현 대통령실 정무 제1비서관의 경우 서초 지역에 아무런 연고가 없지만 서초 갑 당협위원장을 지냈는데, 풍문에 의하면 강남 3구 등의 양지 공천만을 기대하면서 일체의 지역구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러던 중 인천 동미추홀갑 지역구에 갑자기 공천돼 해당 지역에서 자신의 이름을 충분히 알리지 못한 채 21대 총선을 맞이했고 결국 큰 표 차로 낙선한 바 있다.

사진=국회의사당 홈페이지

다행히도 21대 국회 들어 비례대표 의원들의 지역구 활동은 활발한 편이다. 서울 양천갑 지역의 당협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조수진 의원의 경우 과거 눈 건강이 악화돼 수술받았음에도 지역구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느낀다고 측근들에게 토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똑같은 비례의원인 허은아 의원 또한 경기 고양병 지역 당협위원장 공모에 신청했다가 이준석 대표에 의해 서울 동대문을 지역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된 후로도 활발한 지역 활동을 이어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원들의 자세가 많이 개선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헌법 규정 취지에 맞는 비례대표제 운용엔 비례대표제 인식 개선 필요해

다만 비례대표 의원에 대한 국민들의 기본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의원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당 차원의 노력이 더 중요하다. 공천 과정의 불투명성이야말로 국민들이 비례대표제를 개편하라며 성토하는 근본 원인이기 때문이다. 2016년 총선 당시에는 국민의힘이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관련 비례 공천 사건으로 큰 내홍을 겪었고, 2020년 총선에서는 공병호 공관위원장에 의해 공천된 인사들이 논란이 되자 황교안 대표 등이 중심이 되어 공천 명단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면서 크게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 이는 여전히 대한민국의 비례대표 공천이 밀실 공천과 당 대표의 자의에 의한 공천임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현재 OECD 37개국 중 24개 국가가 순수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구 선거 중심으로 진행하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일본을 포함한 13개 국가에 불과하다. 의석수와 득표율의 비례성 보장, 즉 사표 방지와 다당제 도입 측면에선 비례대표제가 큰 장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장점들을 고려해 우리의 현행 헌법도 비례대표제를 명문화하고 있으므로 개헌 논의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헌법적 취지에 맞춰 기존의 비례대표제를 잘 운용해 의회를 운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민들의 신뢰가 필수적인데, 여기에는 정당 차원의 노력과 비례대표 의원 개개인의 노력이 전부 뒷받침돼야 한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