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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회장, 경영권 불법 승계 혐의 ‘무죄’, “檢 반기업 적폐 몰이 자성해야”

이재용 회장, 7년 만에 '사법족쇄' 풀렸다
법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문제없다”
삼성 발목 잡힌 사이 글로벌 경쟁사들 훨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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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사진=삼성전자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부당 합병, 회계 부정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심 재판에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에 법조계에서는 애초에 무리한 기소였다는 반응이 나온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가 ‘수사 중단, 불기소’를 권고했음에도 검찰이 기소를 밀어붙인 탓에 삼성의 기업 이미지 손상은 물론, 글로벌 경쟁력까지 훼손됐기 때문이다.

재판부 “합병으로 삼성물산 주주들도 이득”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는 5일 이 회장의 자본시장과금융투자업에관한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 선고기일을 열고 검찰이 제시한 19개 혐의에 대해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그룹 승계를 위한 부정한 합병이나 이를 정당화하기 위한 회계부정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13명에게도 모두 무죄가 선고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은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하는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 등이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을 저질렀다고 보고, 지난해 11월 17일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했다. 

앞서 2015년 5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제일모직 주식 1주와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바꾸는 조건으로 합병을 결의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 모직의 지분 23.2%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던 반면 당시 이 회장은 삼성전자 지분의 4%가량을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은 없었다. 합병을 통해 이 회장은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가 됐고 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 승계 구조를 확실시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이 회장이 주도해 인위적으로 제일모직의 주가를 띄우고 삼성물산 주가는 낮췄다고 의심하고 있다. 주가조작을 위해 그룹 내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허위 호재를 유포하고 삼성물산의 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의 의결 확보를 위해 불법 로비도 저질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실제로 유리한 합병이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지만, 양사가 합병 필요성 등의 검토를 완료했기에 그 사업성이 인정된다고 봤다. 또한 합병 과정에서 양사의 이사회를 거친 만큼, 이 회장의 지배력 강화만이 합병의 목적이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에게도 이익이 되는 부분이 있어 합병의 주목적이 이 회장의 승계만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검찰은 부당한 합병으로 주주들이 불이익을 봤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주가와 증권사 리포트 등을 봤을 때 (합병이) 주주들의 손해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결국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이 부당 승계만을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고 재판부가 판단하면서, 이 회장 등의 구체적 범죄 사실이었던 합병 관련 중요 정보 은폐 및 거짓 정보 유포, 제일모직·삼성물산 시세 조종 등은 줄줄이 무죄 결론으로 이어졌다. 이에 검찰은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사건’으로 촉발된 수사

삼성의 부당 합병, 회계 부정 의혹 수사는 2016년 불거진 박근혜 정부 국정 농단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다. 이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위해 당시 박 전 대통령을 접촉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 회장을 둘러싼 재판은 ‘뇌물 제공’ 혐의의 국정농단 사건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불법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 등 2가지였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사법부는 이미 2021년 1월에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 목적의 ‘뇌물’ 86억8,000만원을 건넨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국정농단 뇌물 사건 1심부터 3심까지, 당시 이 회장은 구속과 석방을 반복했다. 2017년 2월 1심에서 징역 5년으로 구속된 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집행유예 4년으로 석방됐고, 다시 2021년 1월 상고심인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로 재구속됐다. 이에 이 회장은 삼성그룹에서 구속된 첫 총수이자 2번이나 구속된 총수라는 불명예 기록을 얻기도 했다.

이후 이 회장은 재구속된지 7개월 만인 2021년 8월에 가석방됐다. 1차 구속 기간을 포함해 형기의 60%를 채운 데다 글로벌 경제 상황 등을 고려했다는 게 당시 법무부의 판단이었다. 2022년에는 형기 만료와 함께 광복절 특사로 복권까지 완료됐다. 이와 함께 특별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 따라 5년간 취업제한 조치가 해제되면서 경영 활동 족쇄도 완전히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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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장 사법 리스크, 경쟁사에 날개 달아 줬다

이번 무죄 판결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검찰의 무리한 기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수사심의위원회의 권고를 따르지 않은 전례를 만들고도 완패했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6월 26일 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는 검찰 수사팀에 해당 사건 ‘수사 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바 있다. 검찰 제시 증거만으로는 그 혐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으나 검찰은 기소를 강행했다.

이 회장 관련 재판은 지난 3년 5개월여간 106회의 재판, 검찰 수사기록 19만 페이지, 증인 신문 80명, 제출 증거 2만3,000개 등 방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회장은 대통령 해외순방 일정 동행 등 주요 일정을 이유로 법원 허가를 받아 빠진 11차례를 제외하곤 95차례 법정에 출석했다. 2022년 광복절 사면으로 복권된 후에도 매주 1~2회씩 경영권 승계 사건 재판에 출석해야 한 탓에 해외출장 등 글로벌 경영 행보에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간 이어진 사법리스크로 인해 정상적인 경영 활동도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간 벤처 투자와 중소 인수·합병(M&A)이 꾸준히 이어지긴 했지만, 2017년 미국 자동차 전장업체 하만을 9조원에 인수한 것을 마지막으로 삼성의 M&A 시계는 멈춰있다.

그 사이 미국 애플, 대만 TSMC 등 해외 경쟁사들은 공격적 투자를 통해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스마트폰 세계 시장 점유율이 떨어졌고 시스템 반도체는 1위와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주요 전략적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기업 총수의 발이 묶인 탓에 글로벌 IT 산업이 합종연횡으로 재편되는 와중에도 삼성은 차세대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M&A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실제로 지난해 삼성은 세계 반도체 1위 기업 자리를 인텔에 뺏겼고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애플에 1위 자리를 내줬다. AI 서버 등에 들어가는 고대역폭메모리인 HBM 시장 주도권까지 SK하이닉스에 뒤처진 상태다. 국가 전체 수출의 20%를 담당하는 대표 기업 총수를 피의자로 붙잡아둔 과잉 수사로 피해를 본 것은 결국 국가 경제라는 쓴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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