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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시작도 안 했는데 ‘껑충’ 뛴 관리비, 장기수선충당금 논란 잇따라

"가구당 50~60만원 고지서도 머지않아"
늦어진 만큼 큰 인상 폭으로 '갑론을박'
이상기후로 혹독한 겨울 예고되며 난방비 인상에도 촉각

겨울을 앞두고 난방비 지출 증가가 예상되는 가운데 전국 다수의 아파트에서 관리비 인상안을 두고 마찰을 빚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관리 인력에 지급되는 인건비를 이유로 해마다 관리비 인상을 거듭해 왔음에도 배관이나 도색, 보수 공사 등에 들어가는 비용 증가로 인한 추가 인상이 예정됐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항목은 공동주택의 사용검사 또는 사용승인일을 기준으로 1년이 경과한 달부터 매월 적립하는 장기수선충당금(이하 장충금)이다. 관리비 인상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각종 보수 공사에 필요한 자재와 인건비 등 물가가 급등해 일정 수준 이상의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관리비 인상 “더는 미룰 수 없어” vs “타당한 수준 아냐”

서울 강남구 소재의 A아파트에서는 어린이 놀이터와 주민 운동시설, 난방 배관 공사를 위한 관리비 인상안이 발표되자 주민들 사이 반발이 잇따르고 있다. 불가피한 인상은 수용할 수 있지만, 인상 폭이 과도하다는 것이다. 현재 해당 단지의 장충금은 ㎡당 376원이다. 인상안은 이를 이달부터 2배 수준에 가까운 625원으로 올리고, 2025년에는 1,000원으로 올리는 내용이다. 가구당 부담액으로 환산할 경우 전용면적 84㎡ 거주 세대는 기존 월 3만1,584원에서 이달부터 5만2,500원으로 늘어난 고지서를 받게 되는 것이다.

특히 A아파트는 총 391가구 가운데 230가구가 107㎡의 전용면적으로, 이들은 당장 매월 26,643원의 관리비를 더 부담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 이후 2025년에는 매월 66,768원을 더 내야 한다. 1년이면 80만원이 넘는 금액을 관리비로 추가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이에 한 입주민은 장문의 반박 글을 작성해 모든 가구에 배포하며 관리사무소 측의 인상안 반대에 힘을 실어줄 것을 촉구했다. 해당 글에서 그는 “(인상안대로라면) 가구당 50만~60만원의 관리비 고지서를 받는 것도 흔한 일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며 “현실적으로 타당한 선에서 관리비를 지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장충금은 공동주택의 주요 시설 교체 및 보수를 위해 매월 관리비에 포함해 걷는 비용이다. 집주인에게 부과되는 항목으로 세입자는 이사 나갈 때 총액을 정산해서 돌려받을 수 있고, 입주자 과반수의 서면동의가 있어야 인상과 사용처를 정할 수 있다. 최근 장충금 인상을 둘러싼 마찰이 속출하는 것과 관련해 한 아파트 관리소장은 “시설 수리기사 인건비가 크게 올라 시설을 제때 고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며 “몇 년 동안 장충금에 물가 상승분을 반영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었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 9월 전국 공동주택 평균 관리비는 ㎡당 2,732원이다. 이는 전년 동기(2,399원/㎡)와 비교했을 때 약 13.5% 인상된 수준이다. 서울의 평균 관리비는 ㎡당 3,059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높았으며, 전년(2,671원/㎡) 대비 약 14.3% 올랐다. 서울에 이어 △경기(2,916원) △세종(2,903원) △인천(2,839원) △강원(2,771원) 등 순으로 높은 관리비를 기록했다.

수선유지-장기수선 명확한 기준 없어 현장 혼란 키워

사실 장충금을 둘러싼 논란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장충금은 장기수선계획에 따른 공동주택의 주요 시설의 교체 및 보수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데, 일상적인 관리비로 집행되는 수선비나 시설유지비 등과 구분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3월 경기도 남양주 소재의 B아파트는 남양주시로부터 지난해 10월 실시한 감사결과를 통보받았는데, 장기수선공사를 수선유지비로 집행해 지적받은 총 41건 중 13건이 과태료 처분 대상에 포함됐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은 장기수선계획의 미수립, 정기검토 미실시, 검토사항 미기록 및 미보관의 경우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수립되거나 조정된 장기수선계획에 따른 교체나 보수를 하지 않을 경우에는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또 관리비 및 사용료와 장기수선충당금을 정해진 용도 외에 사용할 때도 1,0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특히 수선유지비와 장충금의 구분 혼란에서 발생하는 ‘용도 외 사용’은 부정행위에 해당해 과태료 부과 외에도 관리회사에 최대 6개월의 영업정지라는 행정처분이 가능할 정도로 그 적용이 매우 엄격한 규정이다.

문제는 이같은 법이 어디까지가 수선유지고 어디부터가 장기수선인지에 대한 기준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관리비 징수 및 운용 주체인 관리사무소는 장기수선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시설물을 보수해야 하는데, 장충금 사용계획서를 작성하고 입주자 대표회의 회부 및 의결 등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다 보니 관리 주체의 편의 또는 충당금의 여유 수준에 따라 시설물 유지관리와 장기 수선이 나뉘는 경우도 허다하다. 법의 허점이 현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사진=pixels

‘역대급 한파’ 예고에 난방비 인상 “어쩌나”

최근 치솟은 에너지 가격과 건설 현장 인건비 급등도 관리비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올해는 평년보다 적은 상태인 북극 얼음이 한반도에 역대급 한파를 불러올 가능성까지 대두되면서 난방비 추가 지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올해 국내 전기요금은 지난 1월과 5월 두 차례 ㎾h당 21.1원 인상됐고, 가스요금 또한 지난 5월 MJ(메가줄)당 1.04원 오른 상태다. 하지만 지난달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따른 중동 정세 불안으로 액화천연가스(LNG)를 비롯한 에너지 원자재 수입 가격이 오르고 있어 난방비 추가 인상이 논의되며 관리비 증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건설 현장의 인건비가 고공행진을 이어 가면서 시설 유지에 따른 부담도 확대됐다. 한동안 상승세를 보이던 건설 원자잿값은 조금씩 안정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인건비는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원자재 가격의 영향을 크게 받는 신축과 달리 구축은 주기적인 수선에서 전문 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인건비 급등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최근 잇따르는 관리비 인상 논란에 대해 한 아파트관리업체 관계자는 “아파트가 낡으면 ‘재건축까지 기다리면 된다’는 식으로 적정 장충금을 걷지 않은 단지도 많다”며 “향후 보수 및 관리 비용을 미리 계산해 해마다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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