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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세는 절반 수준, 상속세는 0원”, 싱가포르 투자 이민 줄 이어

30·40대 자산가 비중 크게 늘어
꾸준한 성장 가능성에 연이은 투자 행렬
이민자 자산으로 亞 최대 금융시장 발돋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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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로 주거를 옮기거나 싱가포르에 법인을 설립하는 한국인 자산가의 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른바 ‘베이비붐’ 세대라 불리는 1960년대생들의 은퇴가 본격화하면서 상속이나 증여 등에 따르는 막대한 세금 부담을 줄이려는 움직임으로, 싱가포르 정부는 역내 투자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지난 2008년 상속세와 증여세를 전면 폐지한 바 있다.

소득세 최고 세율 24%, 양도·배당은 세금 면제

29일 주싱가포르 대사관 등에 따르면 싱가포르 현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이주 및 이민, 법인 설립 컨설팅을 제공하는 업체는 총 7곳에 달한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줄일 방도를 찾기 위해 해외 이주 방안을 고민하는 한국인 자산가가 꾸준히 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싱가포르 정부가 두 세금을 전면 폐지한 2008년 이후 절세를 목적으로 싱가포르를 찾는 한국인들의 발걸음은 꾸준히 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자산가들 사이에서 싱가포르는 ‘세금 천국’이라 불린다. 상속·증여세율이 최대 60%에 달하는 한국은 물론, 오랜 시간 명목상으로만 유지되던 상속세의 실질 부과를 서두르고 있는 중국, 최고 상속세율 55%에 육박하는 일본 등과 비교해 상속·증여세가 전혀 없는 싱가포르는 평생에 걸쳐 이룩한 자산을 자녀들에게 온전히 물려줄 수 있는 유일한 땅이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두고 가업 승계를 위해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상담했던 자산가들은 아예 이주로 방향을 잡기도 한다. 싱가포르에서 한국인들을 상대로 법인 설립 및 이주·이민 컨설팅을 제공하는 한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한국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분들의 상담이 가장 많은데, 처음에는 법인 설립을 위해 문의하셨던 분들도 몇 차례 상담 후에는 아예 이주를 결정하시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싱가포르 이주 행렬이 늘어나는 데는 상속·증여세 외에도 다양한 세금이 축소 또는 면제된다는 점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현행 싱가포르 세법에서는 양도소득세와 배당소득세를 부과하지 않고 있으며, 일반 소득세 최고 세율은 24%에 그친다. 우리나라의 최고 소득세율은 45%로, 여기에 부가세인 지방소득세 4.5%(소득세의 10%)까지 더하면 49.5%에 달한다. 은퇴 후에도 투자 등을 통해 재산을 불리려는 자산가들에게 싱가포르는 최적의 장소인 셈이다.

최근 싱가포르 이주 행렬에서 눈에 띄는 점은 30·40대 자산가들의 비중이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주식, 암호화폐(코인) 투자 들을 통해 자산을 불린 이들은 절세를 비롯한 자산 관리를 위해 물리적 기반을 옮기는 데 거리낌이 없다. 싱가포르 대형 로펌인 TSMP에서 코리아데스크를 이끄는 김미정 변호사는 “한국은 자산의 이동이 쉽지 않고, 역외자산 회피에 대한 방지책도 많아 젊은 자산가들 사이에서는 ‘한국에서 사업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주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인구 확대 위해 유연한 이민 정책 추진

싱가포르 투자 이민 행렬이 본격화한 시점은 2010년대 후반이다. 이는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사회 각계의 목소리가 높아진 데 따른 여파로, 당시 국내에서는 한 달에 한 번꼴로 해외 투자 및 이민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국가들을 제치고 싱가포르가 주목받은 이유로는 지리적 접근성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비행기로 12시간 이상 소요되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달리 아시아 모든 지역에서 6시간 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을 앞세운 싱가포르는 파격적인 세금 면제와 유연한 이민 정책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 등의 자산가들을 대거 유인했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자산가들의 이민 행렬을 부추기는 요소다. 현재 싱가포르 도시 지역 아파트 가격은 79㎡(약 24평) 기준 15억원~30억원으로 10년 전과 비교하면 3배 가까이 뛰었다. 현지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싱가포르 정부가 인구 확대를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인 만큼 부동산 시장은 글로벌 경기 침체 같은 위기가 없는 한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세에 차이가 없었지만, 최근 들어 내국인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가급적 빨리 영주권을 확보하는 게 돈 버는 것’이라는 여론이 힘을 얻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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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중심업무지역 전경/사진=pixels

이민자 자산 지렛대 삼아 성장 거듭하는 싱가포르 시장

문제는 갈수록 늘어나는 투자 이민 행렬이 본국에는 자산 및 인구 유출과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국제투자이민 컨설턴트사 헨리앤드파트너스의 최근 조사에서는 순자산 100만 달러(약 13억원) 이상 자산가의 역외 이주가 가장 많은 국가로 중국이 꼽혔다. 중국은 2022년 기준 1만3,500여 명이 본국을 떠나 다른 나라로 향했다. 우리나라는 800여 명이 이주하며 7위를 기록했다. 다만 이는 전체 인구에 따른 비중을 고려하지 않은 절댓값으로, 한국 인구가 중국과 비슷한 10억 명이라고 가정할 경우 이주 자산가는 연간 1만6,000여 명까지 치솟는다. 2020년대 이후 국내 시장에 불어닥친 투자 한파의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본국을 떠난 자산가들은 싱가포르를 비롯한 이민국들에서 든든한 ‘돈줄’이 돼주고 있다. 해당 국가의 주식이나 부동산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물론 사모투자펀드(PEF)에 출자하는 등 간접 투자를 활발히 전개하면서다. 싱가포르 자산운용사 터너리펀드매니지먼트를 운영하는 에드워드 최 최고경영자(CEO)는 “패밀리오피스가 운용하는 이민자들의 자산은 현지 금융회사들의 핵심 재원”이라고 말하며 “이는 싱가포르가 아시아 최대 금융시장으로 발돋움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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