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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도 못 갚는다” 고금리 기조 속 급증하는 부실 중소기업, 당정 지원 착수

정부, 고금리로 얼어붙은 중소·중견기업 지원에 76조원 푼다
"치솟은 이자 못 견딘다" 흔들리는 중소기업들, 부실 위험 커져
상반기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 희박해, 이어지는 '버티기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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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이 총 76조원 규모의 중소·중견기업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책을 제시했다. 이어지는 고금리 기조로 몸살을 앓는 중소기업을 구제하고, 신산업 육성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당정은 14일 국회에서 ‘고금리 위기 극복과 신산업 전환을 위한 맞춤형 기업금융 지원방안’ 민당정 협의회를 개최, 이 같은 내용에 합의했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대출 이자 부담·연체에 떠밀려 생사의 기로에 선 가운데, 정부 지원책은 침체의 늪에 빠진 중소기업들을 끌어올릴 ‘동아줄’이 될 수 있을까.

중소기업 이자 부담 경감·신산업 전환 지원

정부는 우선 중소·중견기업의 고금리 부담을 덜기 위해 19조4,0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다. 우선 5조원 규모 은행 공동 중소기업 전용 금리 인하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5% 이상 고금리 대출을 받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1년간 최대 2%p의 금리 인하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골자다. 변동금리와 고정금리 간 전환이 가능한 저리 고정금리 대출 상품 등 정책금융에도 11조3,0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일시적 유동성 부족 문제에 직면한 중소기업의 경우, 3조원 규모의 신속 정상화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가상금리 면제 등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신산업 전환을 위해 투자가 필요한 중소기업 대상으로는 56조3,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우선 반도체, 이차전지 등 대규모 시설 투자가 필요한 첨단 산업에 20조원+α 규모의 자금을 지원한다. 아울러 공급망 안정화 기금을 5조원 규모로 조성해 국외에서 국내로 돌아오는 ‘유턴 기업’ 등을 지원하고, 반도체, 이차전지 등 초격차 주력 사업에 15조원을 지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중견기업 지원에도 힘을 싣는다. 유의동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중견기업은 산업 생태계의 허리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간 정책금융 지원에서 소외돼 왔다”고 강조, 차후 15조원 규모의 정부 자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5조원 규모로 5대 은행 공동 중견기업 전용 펀드를 조성하고, 2조원 규모의 회사채 유동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겠다는 구상이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기업들을 위해서 총 2조원 규모의 단계별 맞춤형 보증도 지원한다.

고금리 혹한기에 휘청이는 중소기업계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책에 본격적으로 힘을 싣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 예금은행의 중소기업 대출금리는 11년 만에 5%대를 뛰어넘었다. 이어지는 고금리 기조로 경기 전반이 얼어붙은 가운데, 수많은 중소기업이 치솟는 대출 이자 부담에 허덕이고 있다는 의미다. 원리금 상환은커녕 이자조차 갚지 못해 ‘연체 기업’ 꼬리표가 붙은 기업도 다수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3분기까지 6대 시중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기업)에서 발생한 중소기업 신규 연체 금액은 10조7,233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2년 동기(5조451억원)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준이다.

금융권에서는 지난해 하반기 상환 여력을 잃은 중소기업이 급증했다는 점을 고려, 지난해 전체 신규 연체 규모가 15조원에 달할 것이라 추산하고 있다. 문제는 연체가 시작되는 순간 이자 역시 급속도로 불어난다는 점이다. 당장 원리금 상환 여력조차 없는 중소기업에 연체란 곧 ‘부도’의 도화선으로 작용하게 된다. 한 벤처업계 관계자는 “부실 중소기업이 급증하며 은행의 대출 문턱까지 높아졌다”며 “살아 나갈 길이 안 보인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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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발 부실 채권이 쌓이며 은행권 역시 위기를 맞이했다.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3년 정기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르면, 채권은행이 올해 선정한 부실 징후 기업은 자그마치 231개사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185개사) 대비 약 25% 증가한 수준이며, 2015년(229개사) 이후 최대치다. 이에 업계 안팎에서는 중소기업 중심 기업 대출이 은행권의 새로운 ‘부실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얼어붙은 기준금리, 침체기 지속되나

더 큰 문제는 산업계 전반을 덮친 경기 침체 기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는 이달 초 우리나라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2.3%에서 2.2%로 하향 조정했다. 우리 정부도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7월 2.4%에서 지난달 2.2%로 낮췄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11월 0.1%포인트 하향했으며, 이달에는 기존과 같은 2.2%로 제시했다. 전망치를 상향한 기관은 국제통화기금(IMF, 2.2%→2.3%) 등 극소수였다.

업계는 경제성장률 전망이 부정적 흐름을 보이는 원인으로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을 꼽는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지난해 9월 이후 4회 연속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3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며 한때 시장을 달궜던 조기 금리 인하론을 직접적으로 부인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에 시장에서는 올해 하반기에야 금리 인하 기조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금리 인하 시기는 미국보다 한층 늦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리는 “우리 금리 인하 속도는 (미국보다) 더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 한동안 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바 있다. 고금리 기조의 영향으로 얼어붙은 국내 중소기업계가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당정의 지원책이 실질적인 중소기업 구제에 실패할 경우, 다수의 기업이 위기를 넘기지 못한 채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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