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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5급 공채, 이제는 바꿀 때가 왔다 ①

정부의 모든 5급 공채 시험에 대한 불만 제기 가장 크게 지적되는 부분은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 과거 유산 고집 버리고 전문성에 대한 시장 변화에 발맞춰야

행정고시, 외무고시를 비롯해 입법고시, 법무행정직 공무원 시험 등 정부의 모든 5급 공채 시험에 대한 세간의 불만이 많다. 시험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실제 공무원 업무에 얼마나 많이 반영되는지, 시험과 별개로 지식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5급 공채, 전문가 자격증인가?

가장 크게 지적되는 부분은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이다. 피셋(PSAT)이라 불리는 1차 시험의 경우 사실상의 스피드 퀴즈로, 고교 수학능력시험의 언어영역 및 사회 과목의 좀 더 고급화된 수준에 불과한 내용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빠르게 풀어내느냐를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 부분에선 반발이 적다. 많은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고급 공무원에게 신속한 문제 접근 능력이 중요하다는 데에는 일선뿐만 아니라 응시생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 시험의 공식 명칭은 ‘국가고등문관시험’이기도 했었다.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은 2차 시험 과목들에서 비롯된다. 가장 인기가 많은 직렬 중 하나인 ‘행정직(재경)’의 필수 과목인 경제학, 재정학 과목들에 대한 시험 문제 수준이 실제로 학부 고학년 수준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국가고등문관시험’이라는 명칭으로 치러졌던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의 역사를 보면, 일제가 도쿄대학교를 설립해 국가 엘리트를 키워내기 위한 ‘학원’식의 교육을 했던 187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법과대학 졸업생에게 바로 ‘사법고시’ 합격과 동일한 자격을 주던 그 시절에는 학년마다 학년 시험을 치르고, 불합격생은 그 학년을 다시 다니게 하는 등 엄격한 학사 관리가 이뤄졌다.

학문 연구가 아니라 ‘학원’식의 시험 전용 공부에 불만을 터뜨린 일부 집단이 1897년에 만든 교토대학도 합격률 관리를 위해 결국에는 비슷한 시스템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고, 대학 숫자가 늘어나면서 졸업장과 사법고시 합격을 동일시하던 것을 분리하는 시스템으로 나아가게 된다. 한국에서 1924년 경성제국대학으로 법학 교육을 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 100여 년간 사법고시를 비롯한 ‘고등문관시험’, 혹은 5급 공채 시험은 같은 논리를 갖고 운영되어 왔다. 학부 교육 과정을 매우 충실하게 이수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 시험 합격의 열쇠였던 셈이다.

전문성 담보 못 하는 행정고시, 대안은?

그러나 박사 과정이 전문가 타이틀의 필수 요소인 시대가 되면서 더 이상 학부 교육을 무사히 이수한 수준으로는 전문가 타이틀을 받기는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세종시로 대규모 이주한 국책 연구소에 근무하는 해외 박사 출신 연구원들은 정부 5급 공채 출신 ‘사무관’들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경제 연구소에 재직 중인 미국 유명 대학 박사 학위자는 “학부 수준을 턱걸이한 지식으로 만든 ‘뇌피셜’을 우리가 ‘백업(주장을 옹호)’하는 자료로 만들어 달라는 정부 프로젝트에 대응하는 게 우리 업무”라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해외 명문대 박사 출신 연구자들 대다수가 5급 공채 행정직 사무관들과 대학 시절 선·후배 관계인 경우가 많고, 대부분은 “수학·통계학 등의 고급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박사 유학에 사실상 실패한 인력들이 ‘고시’를 통해 정부 관료의 길을 걷고 있는 경우가 일상”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친다. 이처럼 학부 재학 시절부터 실력 차이가 있었던 만큼, 해외 명문대의 박사 과정을 거쳐 청운의 꿈을 갖고 연구에 매진하기 위해 국내에 귀국했던 많은 고급 인력들이 국가 발전을 위해 쓰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5급 공채 사무관들의 전문성 부족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사진=유토이미지

이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간 5급 공채 사무관 선발 시험의 수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한 경제학 박사 출신 연구자는 “이미 거시경제학계에서 IS-LM이 폐기된 지 오래인데 행시 재경직은 여전히 IS-LM을 잘 외운 답안지를 써내는 공부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며 “1990년대 후반에 이미 폐기된 이론을 2020년대까지 시험에 쓰고 있으니, 행시 합격자를 어떻게 전문가라고 부를 수 있겠나?”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경제학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의 수준 또한 문제가 심각하다. 학계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하는 국내외 논문을 주제 삼아 문제를 출제하면 문제 출제자와 사제지간 등으로 엮인 수험생들이 크게 유리해진다는 것이 행시 수험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문제 출제 공정성 차원에서 최신 연구 결과들을 시험에 반영하기 어려운 이유다. 아울러 이런 공정성에 대한 과도한 심리적 제한이 행정고시의 전문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장치로도 작동하고 있다. 기계적 공정성에만 집착하느라 수험 기간 동안 트렌디하고 실제 도움이 되는 지식은 습득하지 못하고 과거의 한물간 지식들만 달달 외우는 수험을 하게 함으로써 인력의 질을 떨어뜨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물론 일제강점기를 거쳐 100여 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진 정부 고위 관료 선발 시험인 만큼 그 권위가 아직도 유지되고는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전문성에 대한 시장 수요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정부가 인재 선발 방식에 있어 과거 유산만 고집한다면 글로벌 흐름에 뒤처지는 부작용을 낳을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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