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企 35만 곳 폐업 위기, ‘기업 승계 M&A’ 지원 위한 특별법 제정

60세 이상 경영자 31%, 상속세 부담에 매각·폐업 선택
특별법 제정해 '가업 승계'를 '기업 승계' 개념으로 확대
중기부 "韓과 비슷한 日 참고해 다양한 제도 마련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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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주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29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중소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하고 있다/사진=중소벤처기업부

정부가 흑자를 내고도 후계자를 찾지 못해 폐업 위기에 처한 35만여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내년 상반기 내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승계의 개념을 ‘가업(친족) 승계’가 아닌 인수합병(M&A) 등을 통한 ‘기업 승계’로 확장하고 기업이 보유한 기술과 인력이 이어질 수 있도록 민·관 차원의 지원체계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중기부, 기업 승계 지원 등 포함 ‘중소기업 도약전략’ 발표

29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중소기업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5대 전략과 17개 세부 추진과제를 담은 ‘중소기업 도약전략’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내년 상반기 내 ‘기업승계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기업승계특별법은 친족 승계가 곤란한 중소기업의 지속가능한 경영을 지원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과 시스템 마련을 골자로 한다.

이날 오영주 중기부 장관은 “중소 제조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의 고령화 상황을 고려하면 10년 뒤엔 35만여 개 기업이 폐업할 것”이라며 “이로 인한 실직까지 추산하면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기업 승계와 관련한 지원은 자녀에게 승계할 경우 지원하는 세제 혜택 등 가업 승계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한계가 있었다”며 “앞으로 제3자 승계, M&A 방식, 기술 승계, 부분 승계 등으로 기업 승계의 범위를 확대해 지원을 늘린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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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8일 송치영(가운데) 중소기업중앙회 기업승계활성화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기자실에서 열린 ‘기업승계 활성화 법안 국회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해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사진=중소기업중앙회

현재 고령화한 중소기업의 상당수는 지속 경영을 위해 M&A를 통한 승계 등을 희망하지만 정보와 재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 제조업 CEO 중 60세 이상 비중이 2012년 14.1%에서 2022년 31.6%로 급상승했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가 과중한 상속세 부담에 기업 승계를 포기하고 매각이나 폐업을 선택하고 있다. 중기중앙회가 올해 실시한 또 다른 설문 조사에서는 ‘자녀에게 기업을 승계하지 못하면 매각할 것’이란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48.6%에 달했다.

정부는 이러한 현실을 반영해 기업 승계를 희망하는 중소기업 경영자를 종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추진체계 구축에 중점을 둘 계획이다. 이날 발표한 중기부 전략에 따르면 기업 승계 지원 플랫폼의 핵심적인 기능은 기술보증기금이 수행한다. 기술보증기금은 기업과 접점을 가진 정책금융기관으로 매수·매도 희망 기업을 찾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M&A의 자금줄 역할도 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기술보증기금 내 전단조직을 신설하고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M&A는 물론 중소기업 간 거래, 구조조정형 M&A 등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한다. 민간에서는 로펌, 벤처캐피털(VC) 등 60여 개 중개업체가 기업의 M&A를 지원해 수익을 창출하도록 돕는다. 정부와 지자체는 민간 M&A 중개기관의 등록·관리를 비롯해 각종 세제 혜택, 기업가치 평가, 컨설팅 등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日 정부, 경영자 고령화에 대응해 다양한 승계 지원책 마련

한때 ‘제조왕국’으로 불렸던 일본도 경영자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해 대량 폐업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오는 2025년까지 70세를 넘는 중소기업 사장은 245만 명으로 이 중 127만 명이 후계자를 정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소상공인의 고령화로 인해 최대 65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일본 경제 규모가 22조 엔(약 198조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일본 기업의 흑자 폐업은 후계자 부족 현상을 여실히 방증한다. 도쿄 상공 리서치에 의하면 2022년 기준 휴업하거나 폐업한 중소기업의 약 55%가 흑자를 유지한 채 폐업했다. 후계자 부재로 도산 위기에 몰린 기업도 2022년 기준 487건으로 집계됐다. 실제로 친족 승계 실패로 흑자 폐업 위기에 놓인 일본의 중소기업은 60만 개로 추정된다. 이는 전체 중소기업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경영자의 고령화, 흑자 폐업 등 중소기업의 승계와 관련한 현재 일본의 상황은 한국과 매우 유사하다. 하지만 명백히 다른 한 가지는 한국에 비해 한발 앞선 일본 정부의 대처다. 오랜기간 일본은 백년기업 육성과 가업 승계의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지원제도를 도입·운영해 왔다. 일본 정부는 2000년대 들어 중소기업의 후계자난이 심각해지자 세대교체를 지원하는 법을 제정했고 2005년부터는 ‘사업계속펀드’를 조성해 가업 승계가 어려운 중소기업 대상 투자를 확대했다. 해당 펀드는 지분 인수를 통한 자금 지원을 비롯해 경영 혁신과 신사업 개발 등에 대한 자문을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M&A를 통한 사업 승계 지원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의 승계를 뒷받침하기 위해 M&A 지원 민간 펀드에 120억 엔(약 1,058조원)을 출자했다. 일본 은행들도 인구 감소와 마이너스 금리정책 등에 따른 경영환경 악화로 인해 새로운 수익원으로 가업 승계나 M&A에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2022년 기준 기업 승계와 관련한 중소 M&A 청약 수는 1,681건으로 5년 전보다 2.4배 늘었다.

日 상속세율 55%, 상속·증여세 유예 특례조치 등 성과

상속세를 완화하는 정책도 병행하고 있다. 일본의 상속세율은 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보다 높은 유일한 나라다. 그동안 일본 제조업계에는 “중소기업의 폐업 원인으로 상품 경쟁력 저하, 후계자 부재 등 기업 내적인 요인에 더해 상속세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해 왔다. 이에 일본 정부는 중소기업계의 우려를 수용해 2008년 ‘중소기업 경영승계의 원활화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기업을 승계하는 후계자에 대해 상속세와 증여세의 3분의 2를 유예해 줬다.

10년이 지난 2018년 일본 정부는 비상장 중소기업의 소유주가 친족인 후계자에게 자신의 주식을 상속‧증여할 경우, 상속세의 100%를 2027년까지 10년간 납부 유예해 주는 특례조치를 도입했다. 해당 특례 조치는 납세 유예 대상이 되는 비상장주식 등의 제한(주식 총수의 최대 3분의 2까지) 폐지, 납세 유예 비율을 80%에서 100%로 확대, 고용 확보 요건의 탄력화 등을 골자로 한다. 1년 후인 2019년에는 특례 적용 대상을 개인사업자까지 확대해 요건을 완화했다.

해당 특례조치를 활용해 일본의 중소기업들은 승계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속세 부담을 크게 낮출 수 있었다. 기업 승계자 입장에서는 이익이 충분히 발생한 다음 세금을 납부할 수 있어 상속세 납부를 목적으로 대출, 주식 매각 등 출혈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유예된 세금에는 물가상승률, 이자 등이 반영되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또한 상속세 납부에 저리의 정책금융도 활용할 수 있어 탄력적으로 재정을 운용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 특례조치를 신청·적용한 중소기업은 누적 1만6,000개 정도로 특히 납세 여력, 고용 창출 능력 등이 있는 흑자 기업 중심으로 혜택을 보고 있는 점이 고무적”이라고 자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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