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노조, 계열사 희망퇴직에 첫 단체행동

카카오엔터 등 계열사들, 실적 부진에 희망퇴직 추진 지난해 계열사 과반 영업손실, 2분기 영업이익 25%↓ 노조 “구조조정은 빈번한 일, 경영시스템 개선 필요”

지난 1월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 판교 아지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영진 리더십 함량 미달 등을 지적했다/사진=카카오노동조합

26일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카카오지회(이하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 계열사들의 희망퇴직과 관련해 집회를 열고 회사를 상대로 첫 단체행동에 나섰다. 검은색 노조 티셔츠를 입은 조합원들은 경기도 성남시 카카오 판고 아지트에 모여 고용불안 해소와 경영진의 공식 사과를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엑스엘게임즈 등 카카오 소속 노조원 300여명을 비롯해 화섬식품노조 수도권지부·IT위원회 등이 참여했다.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엔터프라이즈,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계열사들이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며 “회사가 연이은 사업 실패로 인한 피해를 직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2019년 본사에 분사한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분사 이후 적자가 이어지면서 지난해 140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258억원으로 분사 당시에 비해 절반 이상 감소했다. 이에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해 추가 투자유치를 추진했지만 이마저도 불발하면서 지난 5월에는 백상엽 전 대표가 비상근 고문으로 물러났다. 최근에는 클라우드 사업을 두고 모든 사업에서 철수하겠다며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의 전체 임직원은 2022년 기준 1,176명으로 이중 80%가 비(非) 클라우드 사업부 소속이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도 지난달 사실상 희망퇴직에 해당하는 ‘넥스트 챕터 프로그램’(NCP)을 실시했다. NCP는 10년차 이상 고연차 직원의 이·전직을 권고하는 프로그램으로 현재 퇴직 절차가 거의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졌다. 카카오 손자회사인 게임 개발사 엑스엘게임즈도 다음달 1일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접수한다.

이날 카카오 노조는 그룹 내 컨트롤타워인 ‘CA협의체’에 김범수 센터장의 사과를 요구하는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노조는 김범수 센터장의 응답이 없을 경우, 오는 9월 단체협약에서 시스템 개선을 제안한다는 방침이다. 또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다른 계열사 분회들은 회사 앞 피켓팅이나 다양한 이벤트 등의 형식으로 단체행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노조 “경영진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계열사 적자 키워”

하지만 노조가 경영 악화로 인한 구조조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노조의 핵심 요구사항은 희망퇴직 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경영진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함께 공동체 협의체 구성 등 견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 지회장은 항의서한을 전달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노조는 구조조정 반대를 전면적으로 주장하고 있지 않다”며 “카카오에서는 구조조정과 같은 일들이 매우 빈번하게 있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희망퇴직 절차에 돌입한 엑스엘게임즈의 진창현 분회장도 “엑스엘의 전 임직원의 노력으로 아키에이지 오를 출시했고 구글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면서 오랜 기간 지속돼온 재정 적자를 벗어나 흑자 전환했지만 최근 아키에이지 팀은 구조조정 통보를 받았다”며 “한쪽에서는 적자 상황에서도 성과급을 지급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재무 위기를 이유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비상식적인 경영 DNA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계열사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무리한 분사를 지적했다. 자회사 분사, 투자 유치, 기업공개로 이어지는 카카오식 성장 방식이 경기 침체로 인해 재정 위기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카카오 주요 계열사 13곳 중 과반이 적자를 기록했다. 영업손실을 기록한 계열사를 보면 카카오엔터프라이즈가 1,406억원으로 가장 큰 적자를 기록했고 이어 카카오스타일 518억원, 카카오브레인 301억원, 카카오엔터테인먼트 138억원, 카카오헬스케어 85억원 등으로 집계됐다. 상장사인 카카오페이도 455억원의 손실을 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카카오의 올해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283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서승욱 카카오 노조 지회장은 “현재 계열사들의 재무 위기는 경영진들의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인한 것”이라며 “카카오엔터프라이즈 분사 당시에도 경영진이 준비 없이 분사를 결정해 내부 반발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판단으로 위기가 온다면 원인과 결과에 대한 반성과 회고가 있어야 한다”며 “이대로 가면 제3, 제4의 위기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상과 처우에 민감한 MZ세대 중심으로 노조 가입 증가

현재 업계 최대 노조인 카카오 노조는 본사 기준으로 1,900명의 조합원을 확보하고 있다. 본사와 계열사를 모두 합하면 4,000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 카카오 노조는 IT업계 최초로 첫 과반노조 출범에 대한 기대를 모았지만 임직원이 늘어나면서 아쉽게 과반노조를 달성하지는 못했다. 2022년 상반기 카카오의 임직원 수는 3603명이었으나 올해 1월 공개한 카카오 사업보고서상 전체 임직원 수가 3901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지회장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기준으로는 과반노조를 달성한 것은 확실하다”며 “다만 근로기준법상 과반 달성 여부는 확인이 필요한 상태이지만 지금 추세라면 과반노조 달성이 임박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IT업계는 이직이 빈번하고 직원들의 평균연령이 낮은 기업의 특성상 노조 가입률이 낮다. 노조에 가입해 회사가 변화하기를 바라는 것보다 이직하는 게 더 빠른 해결책으로 보는 분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문화에도 불구하고 카카오가 전 계열사를 합쳐 4,000여명의 조합원을 확보한 것은 달라진 노동문화를 반영한다. 합당한 보상과 처우에 민감한 MZ세대들이 늘어나면서 근무제도, 복리후생, 성과와 보상 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카카오 노조는 카카오공도체 노조의 조합원이 4,000여명에 이른다고 밝혔다/사진=카카오노동조합

경영진에 리더십·소통 요구하며 회사 경영에 적극 의견 개진해

지난 1월, 카카오 대표와 직원들간의 간담회에서는 소수의 임원들에게 스톡옵션 형태의 보상이 집중되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해 카카오 직원의 평균 연봉은 스톡옵션을 포함해 전년 대비 19% 감소했다. 연봉인상률도 전년 대비 절반 이상 줄어든 6%다. 반면 조수용·여민수 전 공동대표는 스톡옵션 행사이익으로 지난해 각각 364억4700만원, 334억1700만원의 보수를 챙겼다. 올해 직원들의 평균 연봉 인상률도 전년(15%)의 절반 수준인 6%다.

이에 대해 서 지회장은 “지난해 실적 부진에 대해 직원들이 고통 분담을 했지만 경영진은 최상위권의 보상을 받았다”며 “임직원의 보상에 있어 방향성이 같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홍은택 대표는 “재임 중에 주가가 2배로 오르지 않으면 스톡옵션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서 지회장은 “지난 2018년 10월 약 100명으로 시작한 노조가 2020년 500명, 2021년 1,000명 이상으로 성장했다”며 “2022년 이후에는 경영진의 리더십, 소통, 신뢰가 부족으로 빚어진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조합원의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노조에 따르면 2021년 말 류영준 카카오페이 전 대표 등의 ‘지분 블록딜 매각’ 논란으로 조합원 수백 명이 증가했고 지난해 6월에는 카카오모빌리티 매각 논란, 집중근무 시간 도입, 주가 하락 등에 실망한 직원들이 대거 노조에 가입했다.

여기에 내부지침, 근무여건, 조직개편 등 지나치게 잦은 변화가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동안 카카오의 근무제도는 5번이나 변경됐고, 최근에는 전면 출근 체제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의 불만이 커지면서 조합원이 증가했다. 하지만 카카오 노조의 가입률이 증가하는 배경에는 단순히 보상과 처우 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 경영진의 판단 착오와 부실 경영, 실적 부진과 잇다른 혼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노조로서 회사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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