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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하이브의 SM 적대적 인수로 본 행동주의 헤지펀드 규제

행동주의 헤지펀드, 문재인 정권 들어 급격하게 성장 중 SM의 이수만 총괄 내부 계약 공개 후 문제 삼아 퇴진에 이르기도 과거 사례에서도 피해 본 사람은 독단적인 기업 오너 뿐이라는 평가도 행동주의 헤지펀드 역할 있는 만큼 과도한 경계나 비난 피해야 건전한 주주 문화, 경영 문화 정착을 위한 제도적 보완 필요

방탄소년단(BTS) 및 아이브, 뉴진스 등의 인기 아이돌들의 소속사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통해 에스파, NCT 등이 소속된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권 인수를 방시혁 의장의 주도하에 추진한다.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과 소액 주주 지분을 같은 가격에 사들여 최대 40%의 지분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SM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경영권 인수 시도에는 행동주의 헤지펀드인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의 역할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상장사의 지분 3% 이상만 확보하면 주주총회 소집 청구, 주주제안, 회계장부 열람권 등의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기에, 헤지펀드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이 우호 지분 3%를 통해 SM에 자료 요청을 했고 이를 통해 이수만 총괄이 맺었던 이면계약서가 대대적으로 공개가 된 것이다. 해당 약정은 2015년에 체결된 이후 꾸준히 연장된 바 있다.

사진=하이브, SM, 사진편집=벤처경제

이수만 총괄의 내부 계약 밝힌 행동주의 헤지펀드

공개된 라이크기획 프로듀싱 라이선스 계약 별지 2 ‘계약 종료 후 정산에 관한 약정’에 따르면, 이 총괄은 사실상 아무런 용역에 대한 의무 없이 기존 발매한 음반 음원 수익에 대해 2092년까지 로열티 6%를 받도록 돼 있었다. 2025년 말까지는 매니지먼트 수익에 대해서도 로열티 3%를 수취하게 돼 있었다. 이러한 이면 계약서의 존재 때문에 SM엔터테인먼트가 회사 이익률의 6%를 매년 라이크기획이 수취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본래 SM은 소위 ‘빅4 엔터’ 중 가장 낮은 영업이익률을 기록해 왔기에 이면계약이 존재한다는 의심을 지속적으로 받아온 바 있다. 또한 상장사임에도 창업자의 독단에 따라 움직여 왔던 것도 펀드의 지적 대상이 됐다.

이렇게 SM엔터테인먼트의 내부 문제를 세상에 알린 얼라인파트너스 자산운용은 전형적인 행동주의 헤지펀드에 해당하는데, 행동주의 헤지펀드란 특정 기업 지분을 매입한 뒤 배당 확대나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재무구조 개선, 지배구조 개편 등 주주가치를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요구해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헤지펀드를 의미한다. 소송이나 주주총회 표 대결마저 마다하지 않는 공격적인 운용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진=얼라인파트너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급속한 성장

국내에서 이러한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급증한 데에는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대주주 의결권 3% 룰’ 등 이른바 경제민주화 법안이 대거 채택된 영향이 크다. 감사·감사위원 선임 등에 최대주주와 특수 관계인의 의결권을 최대 3%로 제한하는 상법 규정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소수주주권 행사의 선택적 적용 명문화 이후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활동이 크게 증가한 것이다.

그렇게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이 완화되면서, 일정 기간을 보유하지 않아도 상장사의 지분 3% 이상을 확보한 헤지펀드는 손쉽게 주주총회 소집 청구, 주주제안, 회계장부 열람권 등의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이후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주제안에 많이 담는 요구 중 하나는 감사·감사위원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주의 펀드들의 급증은 회사지배구조를 이사회 중심 체제에서 주주 중심 체제로 변화시키는 현상을 불러일으킨다. 대체로 행동주의 펀드들이 목표 대상으로 삼는 회사들은 대주주의 독단적 의사결정의 비중이 크고, 대주주의 지분 보유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으며, 그에 따라 주가가 상당 부분 저평가돼 있는 회사들이 많다. 물론 행동주의 펀드 활동과 기업성과 간에 단기적,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존재하나, 목표 대상 회사가 얻은 수익의 분배과정, 주가 상승의 원인 등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003년 SK-소버린 사례,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대표적인 활동 사례로는 2003년 있었던 SK 소버린 사태가 있다. 최태원 회장이 횡령을 저질렀다는 보도가 일면서 SK그룹의 주가는 폭락했고, 행동주의 펀드 소버린은 SK그룹의 주식을 적극적으로 매입했다. 그리고 최태원 회장 퇴진 시위를 벌였으며 최 회장이 퇴진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교묘한 주식 매입에 나서기도 했다. 감사위원 선출 시 3% 의결권 제한을 받지 않도록 미리 5개 자회사에 2.99%씩 지분을 분산시킨 것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이 일로 경영권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몰렸으며, 결국 SK 측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약 1조원을 소진했다. 헤지펀드 소버린은 2년 후 투자액의 5배인 9천459억원을 주식매매차익과 배당금으로 챙긴 뒤 철수했다.

그렇지만 소버린의 이러한 행태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는 해석도 있다. 대기업 경영진들이 함부로 회삿돈을 횡령해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재계 전반으로 퍼져나가면서 전반적인 기업 경영 역량이 발전했다는 것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의 공격적인 기업 공략이 우리 기업들의 경영 투명화를 가능케 했다는 지적이다. 사건을 정리하던 중 서울대 경제학부의 이상승 교수는 “횡령했던 기업주를 제외하고 손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나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핵심은 소수주주의 권익 보호, 제도적 해법은?

이에 사외이사라는 시장 선순환 구조를 강화할 수 있도록 제도상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명무실하게만 작동했던 사외이사 시스템이 부족한 탓에 주주자본주의의 목소리가 대두되고, 이어 소수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행동주의 헤지펀드가 성장하고 있는 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행동주의 헤지펀드의 무분별한 ‘기업사냥’은 막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이유는 헤지펀드들이 주식을 매집해 단기적으로 주가를 높여 수익을 내는 약탈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주로 요구하는 ▲배당 확대 ▲소모적인 경영권 분쟁 발생 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다. 이에 행동주의 헤지펀드들이 배당 확대 등을 위해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 잠재성을 떨어뜨리고 소모적인 경영권 분쟁을 발생시키는 것의 대응방안으로 시차임기제, 소수주주권의 행사요건, 주식 대량보유자의 보고의무 등이 제시된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악성종양’으로 묘사됐던 적대적 인수, 경영권 분쟁 등이 상장사에서 경영진의 독단적인 선택 때문에 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경영진들이 ‘악성종양’이었고, 그들을 제어하는 제도적 수단이 부족했기 때문에 행동주의 펀드들이 급격하게 늘어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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