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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백인 남성 없는 英 트러스 정부, 보수당 정부 맞나?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 4대 요직에 ‘백인 남성’이 없는 내각 구성 콰텡 재무 장관, 업무 역량 갖추고 있나? 업무 역량에 대한 의구심 증폭 영국 보수주의 정당 성향과 색다른 인선에 갑론을박 이어져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 제임스 클레버리 외무장관, 쿼지 콰텡 재무장관, 테리즈 코피 부총리 겸 보건복지부 장관/사진=BBC

6일(현지 시각)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신임 총리가 재무·외무·내무 장관 등 4대 요직에 ‘백인 남성’이 없는 내각을 구성해 화제가 되고 있다. 영국 역대 최초라는 상징적인 의미나 득표 극대화라는 정치적인 함의와는 별개로,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적극적 우대조치(Affirmative Action)성 인사가 영국의 국익 측면에서 바람직하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초대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쿼지 콰텡 전 에너지 장관의 전문성과 관련해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영국 보수당의 전통적 스탠스에 걸맞은 인사 지명이 아니라는 비판이 주를 이룬다.

런던 현지 및 영미권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전문성 논란이 일고 있는 콰텡 장관은 부모가 1960년대에 아프리카 가나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이민 2세다. 영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꼽히는 이튼 칼리지 출신으로, 케임브리지 대학의 트리니티 칼리지 학부 과정을 졸업했으며, 하버드 대학교에서 경제사(史)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데일리 텔레그래프에서 칼럼니스트를 역임한 콰텡은 JP모건 체이스에서도 잠깐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 유권자의 시각에서는 엘리트 코스만 밟았다고 여겨질 수 있으나, 전문성 측면에서는 영국 재무부 장관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에는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인사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콰텡 장관, 업무 역량 갖추고 있나?

정치적 대표성이나 역사적 의의보다 현지의 영국 유권자들이 재무장관에게 철저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1992년 있었던 ‘조지 소로스의 영란은행 굴복 사건’처럼 재무장관을 비롯한 재무부의 역량이 뛰어나지 않을 경우 벌어질 수 있는 여러 사건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내 생전에 여성 재무장관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던 마가릿 대처 수상의 발언대로 뛰어난 전문성을 요구받는 자리인 만큼 성별 안배와 같은 정치적 고려보다는 실력 중심으로 임명돼 왔고, 그래서인지 영국 역사상 여성 재무장관은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디크 칸 시장/사진=AP통신

문제는 리즈 트러스 정부가 실시하고 있는 적극적 우대 조치와 비슷한 수준의 성별·인종 안배가 영국 보수당의 정신에 위배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11년 기준으로 영국 런던에서 영국 출신 백인의 비중이 43.4%에 그치는 등 외국인과 유색인종의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며, 현직 사디크 칸 시장의 당선 또한 유색인종 표심을 확보해야 하는 당위성을 보수당에 부여하지만, 사실 정체성 정치에 가까운 적극적 우대 조치를 통해야만 유색인종의 표심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영국 보수주의 정당 성향과 색다른 인선, 갑론을박 이어져

영국 보수당의 유명한 사상가 퀀틴 호그가 쓴 ‘보수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저서에 따르면, 보수주의는 모든 변화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곧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일시적인 시대적 유행이나 사고방식에 저항하며 사회적 균형을 잡고자 하는 정치적 노선이며, 점진적 변화와 전통을 중시하고 그에 기초한 유기적인 사회를 보호하려는 중도적 입장을 대변한다고 명시했다. 즉 표심을 위해 내각 인사를 임명하면서 실력보다는 정치적 배경을 고려하는 것은 사실상 보수주의가 지양해야 하는, 시대적 유행에 따른 일시적인 트렌드에 가깝기에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또한 적극적 우대 조치에 가까운 내각 인사 등용이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 태어난 백인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는 만큼 우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글로벌 소득 불평등의 코끼리 곡선 이론에 따르면, 성인 1인당 실질소득 증가율에 있어 미국과 서유럽의 평범한 사람들은 신흥 개도국의 국민들보다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의 백인 노동자 계층의 남성이 사실상 소수자 집단보다 오히려 경제적으로 지위 상승의 여지가 가장 낮은 집단이 됐다는 사회학자들의 분석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사실상 신분제 국가인 영국은 고위직의 주류 출신 성분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의 핵심 요직 진출이 원래도 어려운 만큼 소수인종에 대한 적극적인 인사 안배가 이뤄질 경우 소외되는 사람들의 고위 공직 진출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유색인종 표심을 잡기 위해서 유색인종 정치인을 선발하고, 여성 표심을 잡기 위해서 여성 정치인을 선발한다는 생각이 득표 전략 측면에서 실제로 정치적 소수자들의 정치 참여를 늘리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득표 극대화를 위한 인사는 정부조직의 효율성과 전문성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엄청난 역차별적 성격도 갖고 있다. 영국 보수당의 사상가 퀸틴 호그가 과거에 지적한 대로 ‘일시적인 유행’에 해당하는 선거 캠페인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집권하여 만든 내각이 앞장서서 실시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윤석열 정부의 초기 인사가 이른바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이라는 말을 들어가며 크게 혹평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인 국민의힘의 지지층 사이에서는 크게 반발이 없었던 것으로 말미암아, 보수주의의 본령을 지키는 차원에서 일어난 일로 해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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