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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男수첩] 인권 감수성이 전부는 아니다

인권위,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정책 성평등 관점에서 재검토돼야 남성의 병역자원화는 괜찮고 이주 여성의 도구화는 안 된다? 정책 집행자들의 편협한 감수성은 국가 정책 실행에 위험성 초래할 수도

고대 로마 제국은 인구 감소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자구책을 시행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취한 결혼 촉진 정책으로, 결혼하지 않은 시민에게 엄격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아우구스투스는 독신세라는 독특한 세율 체계를 신설해 비혼자들에게 소득의 1%를 과세했다. 뿐만 아니라 만 30세 이상 로마 시민은 기본 권리 중 하나인 참정권을 빼앗았고, 50세를 넘어선 비혼자의 경우 재산 상속권마저 박탈하는 제도를 도입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인권 침해의 소지가 다분한 정책이지만 당시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로마 제국의 명운이 걸린 문제였던 만큼, 필수 불가결한 조치로 평가됐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한 인구 감소 문제는 고대 로마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8개 회원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으며, 합계출산율이 1명을 밑돌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바로 위인 이탈리아가 1.24명을 기록했고, 1위는 2.9명을 찍은 이스라엘이 차지했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인종적 편견 함의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소위 ‘농촌 총각’과 외국인 유학생 여성 사이의 국제결혼을 장려하는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정책이 성평등 관점에서 재검토돼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는 앞서 시민사회단체 등으로 구성된 진정인들이 A시가 발송한 ‘인구 증가를 위한 농촌 총각 장가보내기 추진 협조문’에 명시된 사업은 혼인 목적으로 입국하지 않은 유학생 여성을 국제결혼의 대상으로 삼은 차별적 시책이라며, 진정을 제기한 것에 따른 판단이다.

인권위는 “농촌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은 농촌 비혼 남성과의 결혼 및 출산을 통해 인구 증가에 기여할 외국인 여성을 모집하려는데 목적이 있다”며 “이는 여성을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과 농사 등 가족 내 무급노동의 의무를 진 존재로 인식하는 가부장적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고 꼬집었다. 또 “그동안 농촌 지역의 국제결혼은 한국 남성의 ‘정상가족’ 구성을 위한 가부장적 틀에서 이행돼왔다”며 “A시가 비록 B국 유학생 여성을 차별할 의도가 없었더라도 B국 여성이 성차별화된 역할을 수행하기에 적합하다는 인종적 편견을 함의하고 있다”고 A시가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이주 여성을 출산 및 보육을 담당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 자체가 가부장적인 성 역할 고정관념에서 출발하는 인종적 편견을 담고 있다고 지적했으나, 이러한 주장이 이주 여성의 실제 상황과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개발도상국 출신 여성들이 대한민국으로 이주하게 되는 과정에 강제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주 여성들은 보다 나은 환경과 기회를 찾기 위해 선진국인 대한민국을 선택했으며, 출산과 보육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을 기꺼이 맡아나가고 있다. 이를 두고도 가부장적 고정관념에 의한 사람의 ‘도구화’로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의 진정한 인권과 복리를 증진시키는 길이지 않을까?

이중잣대 들이대는 국가인권위원회

또한 인권위가 제시한 인권 개념 자체에도 모순이 있다. 이주 여성들을 출산 및 보육을 담당하는 대상으로 간주하는 게 문제라면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20대 초반 남성들을 모든 공문서 및 언론에서 군 복무를 위한 병역자원으로 간주하는 사회적 관행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만약 전자만 문제고 후자는 아니라면, 이는 이중잣대에 해당한다. 때로는 국민을 국가 정책적 목표의 수단으로 취급하는 것이 국가 공동체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도 있는 만큼, 이러한 정책적 수단에 과도한 윤리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나아가 인권위가 추구하는 인권 개념이 대한민국 통념의 범주에 속하는지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이러한 개념은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이 분야에서 직접적으로 고민하고 종사하는 사람들의 ‘인권 감수성’에 맞춰 설계됐을 공산이 크다. 당장 정치권만 봐도 인권 감수성의 최하위 카테고리인 ‘젠더 감수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됐고, 문제를 제기하는 쪽의 근거도 상당히 탄탄하다. 인권 감수성이란 매우 취약한 논리적 기반에 근거하고 있어 언제든지 반박될 수 있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사진=폴 블룸

편파적으로 발휘되는 인권 감수성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인권 감수성을 개인이 타인의 인권과 미래적 가능성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권 감수성이 편파적으로 발휘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지적하고 있다. 예컨대, 인간은 자신과 유사한 인물이나 그룹에 대한 인권을 더욱 존중하는 경향이 있으며 강한 정치적 성향이나 사회적 전통에 따라 인권 감수성이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권 감수성은 개인적인 경험, 문화적 배경, 사회적 지위 등 다양한 인자들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즉 인간의 공감 능력에 기반한 인권 감수성이라는 것은 그 성질상 보편적일 수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인권위에서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국가 정책이 일부 정책 집행자의 감수성에 따라 실행되는 것 자체가 얼마나 편협한 잣대에 의한 것인지, 얼마나 위험성이 큰지 인권위는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국가 정책은 국민의 장기적인 이익 증진에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는 것이지, 일부 정책 집행자들의 편협한 감수성에 포커스가 맞춰져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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