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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부메랑? 3년간 정전 건수 60% 급증, ‘재정 위기’ 한국전력에 전기료 인상 담론까지

정전 발생 건수 1,000건 넘었다, 2000년 이후 처음
적자 부담 가중한 한국전력, 거듭된 전기료 인상에도 누적 적자 '여전'
신재생에너지 투자 강화한 문 정부, '탈원전'이 한전 적자 부추겼나
KEPCO_PK_20240314

지난해 국내 정전 발생 건수가 2000년 이후 23년 만에 연 1,000건을 넘어선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전력의 경영난이 심화하면서 최근 3년간 정전 건수는 60% 넘게 증가했다.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도 더 이상 정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부쩍 늘어난 정전 사태, 한전 적자가 원인?

13일 한국전력(Korea Electric Power Corporation, KEPCO)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총정전 건수는 1,046건이었다. 정전 건수는 2019년과 2020년만 해도 각각 642건, 651건에 그쳤지만 2021년 738건으로 뛰더니 2022년 933건으로 크게 늘었다. 3년 만에 무려 60.7% 증가한 것이다. 가구당 정전 시간도 매년 늘고 있다. 2019년 8.59분이던 가구당 정전 시간은 지난해 9.14분으로 길어졌다. 이에 대해 한전은 “작업할 때 전기를 끊고 하는 등 작업자 안전 관리를 강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한전이 경영난을 이유로 송·배전망 투자를 줄이면서 그 여파로 정전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내구연한이 다한 설비를 계속 교체해야 하지만 한전이 이런 설비에 투자할 상황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정전이 급증하기 시작한 2021년, 한전은 5조8,465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전년에 4조863억원의 흑자를 거둔 것과 대비되는 양상이다. 지난 2022년엔 32조6,552억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영업적자를 기록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도 4조5,691억원가량의 손실을 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송·변전망과 배전망 투자 또한 감소하는 추세다. 한전에 따르면 국내 발전량이 2020년 55만2,162GWh에서 2022년 59만4,400GWh로 7.6% 증가하는 동안 전력망 투자는 6조1,883억원에서 6조135억원으로 소폭 줄었다. 지난해엔 경영난 극복을 위한 자구안을 내라는 정치권의 압박에 “전력망 투자 시기를 늦춰 1조3,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직접 밝힌 바도 있다.

이에 한전의 재정 위기로 크고 작은 불량 전기 사고는 갈수록 늘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전이 전력 설비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과정에서 노후화된 전력망 설비의 고장 횟수가 늘고 복구 능력도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지난해 12월께 울산에서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도 변전소 설비 이상으로 인해 발생했다. 이날 정전은 지난 2017년 서울·경기 지역에서 발생한 20여만 세대 규모의 정전 이후 6년 만에 가장 피해가 큰 정전 사고로 기록됐다. 지난해 11월엔 경기도 수원, 용인, 화성, 평택 등 수도권 남부 지역에서 ‘전압 강하’로 인한 정전 사고가 발생해 용인 에버랜드의 롤러코스터 T익스프레스가 갑자기 멈춰서는 등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당시 전압 강하 사고 또한 평택 고덕변전소의 개폐기 절연체 파손으로 인한 것이었다.

공급 불안에 전기료 인상 목소리도

전문가들은 한전 경영난이 지속될 경우 전력 공급 불안으로 기업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보다 앞서 전력망을 설치한 미국과 영국은 전력망 보수 투자를 소홀히 한 결과 가구당 정전 시간이 각각 43.8분, 38.4분에 달한다. 주요 제조업체가 이들 국가에 신규 투자할 때 전력 인프라 확충을 최우선 조건으로 내걸 정도다. 산업 경쟁국인 대만도 가구당 정전 시간이 16.4분에 달한다.

반면 일본(7.0분)은 여전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유 교수는 “일반 국민의 불편도 문제가 되지만 반도체 공정 같은 경우 (정전으로) 시설 가동이 한 번 중단되면 추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를 보게 된다”며 “산업 선진국인 한국은 더 적극적으로 전력망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선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전기료 인상을 감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전의 영업적자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부수적인 문제도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전기료 인상이 한전의 재정 안정을 담보한단 사실은 이미 입증된 바 있다. 앞서 지난해 한전은 10개 분기 만에 영업이익 1조9,966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2022년 4월 이후 3차례 전기료가 인상되면서 비용 부담이 줄어든 영향이다. 한전의 지난해 3분기까지 전기 판매 단가는 kWh당 151.1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29.8% 올랐고, 전기 판매 수익도 61조7,849억원(약 466억 달러)으로 28.8% 늘었다.

이미 수차례 전기료 인상이 진행된 만큼 더 이상 인상해선 안 된단 의견도 있으나, 잠깐의 ‘반짝’ 흑자론 한전의 부담이 완전 해소되기는 어려우리란 전망이 더 우세하다. 이전까지 누적된 적자 금액이 만만찮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전기료 인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매출 개선은 올해까지 총 2조8,000억원 선이지만, 한전이 지난 2021년부터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한 순적자는 44조9,550억원에 달한다. 당시 한전이 기록한 2조원의 영업흑자가 22분기 연속 반복돼야 겨우 해소할 수 있는 규모다. 추가적인 전기료 인상이 필요한 이유다. 전문가들도 “결국 장기적으로 대외 변수 불확실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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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커지는 한전, 전임 정부 ‘탈원전’의 원죄?

이런 가운데 최근엔 전임 정부 시절 무리한 탈원전의 원죄가 한전의 적자를 악화했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리한 탈원전 정책과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이 겹치면서 한전의 적자가 천문학적으로 누적됐다는 것이다. 원전 비중이 축소되지 않았다면 상대적으로 단가가 저렴한 원전을 통해 연료비 급등에 따른 적자 폭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실제 문재인 정부 들어 원전 가동률(전체 시간 대비 가동시간)과 이용률(설비용량 대비 발전량)은 박근혜 정부 때보다 감소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임기 5년간(2017~2021년) 원전 평균 이용률과 가동률은 각각 71.5%, 71.9%로 박근혜 정부(81.4%, 81.7%) 대비 약 10%p 줄었다. 동기간 한전의 연간 평균 영업이익(손실)은 박근혜 정부 7조6,637억원에서 문재인 정부 3,390억원으로 약 96%나 감소했다.

원전은 평균 정산단가가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한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게시된 전력시장의 ‘원료원별 정산단가'(2001~2022년)를 보면 원전의 평균 정산단가는 47.3원/kWh로 석탄(66.5원/kWh)의 71%, 액화천연가스(LNG·122.2원/kWh)의 39% 수준이다. 과거 극심한 전력난에 시달렸던 한국이 원전을 선택한 이유다. 그러나 탈원전을 내건 문재인 정부는 대체 에너지원으로 신재생에너지, 특히 태양 에너지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었다. 문제는 원전과 신재생에너지의 단가가 비례하지 않는단 점이다.

실제 2022년 산업통상자원부의 ‘단위발전량 대비 투자비용 분석자료’에 따르면 중장기 연간발전량 대비 투자비용(원/KWh) 경제성 분석 결과 1kWh 전기 생산에 원전은 500원이 들지만 풍력은 4,059원으로 원전의 8.1배, 태양광은 3,422원으로 원전의 6.8배에 달한다. 발전량 1GWh당 필요한 설비면적에서도 원전은 78㎡인데 반해 풍력은 2,682㎡로 34배, 태양광은 13,235㎡로 원전의 179배에 달하는 면적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22년 이창양 당시 산업부 장관이 “원전 비중과 한전 실적은 0.46 정도의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언급한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국제 연료 가격이 올라 전력공급 비용이 늘어날 경우 발전원가가 싼 원전의 발전 비중이 높으면 비용 증가를 억제해 한전의 적자를 줄일 수 있는데, 탈원전 정책 아래 원전이 상대적으로 단가가 높은 태양 에너지로 대체된 탓에 적자를 키웠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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