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일본, 모순되는 경제 정책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

3% 인플레이션·1% GDP 성장률 달성했지만 실질 임금은 하락세
'빚내서' 보조금 집행하는 일본, 국가 부채 사상 최고액 갱신 중
완화정책 고수하는 일본은행, 이자에 발목 잡혀 금리 못 올리나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크로퍼드 공공정책 학교(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 및 사회에 대한 연구·분석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지난해 4월 기시다 후미오 정부는 구로다 하루히코 전 일본은행 총재의 후임으로 우에다 가즈히코 현 총재를 발탁했다. 구로다 전 총재가 대규모 금융 완화 정책을 골자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선봉을 맡은 지 약 10년 만이다. 당시 시장은 이를 금융 정상화 신호로 받아들였지만, 우에다 총재는 취임 직후 “현 정책이 적절하다”는 입장을 표명한 뒤 현재까지 완화 정책 유지를 기조로 삼고 있다. 작년 일본은 여러 긍정적인 경제 지표를 달성했지만, 국내외에선 현 정책이 모순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Japans-economic-balancing_EAF_20231231
사진=East Asia Forum

인플레이션의 실제 요인, 경제 성장 아닌 수입 비용 상승

아베노믹스는 거품경제 붕괴 후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경기 침체를 배경으로 탄생했다. 2012년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수출경쟁력 약화를 부른 엔고(円高) 현상과 계속되는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 탈출을 목표로 선언한 무제한적 양적완화 정책이 아베노믹스다. 이 과감한 경기 부양책은 돈을 풀어서 엔화 약세를 유발하면 수출 증대를 시작으로 기업 성장, 임금 상승, 소비 진작, 물가 상승, 다시 기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다.

아베의 후임인 기시다 총리는 시장의 예상을 깨며 아베노믹스를 이어갔고, 지난해 저조한 정부 지지율 가운데서도 1%를 초과한 실질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표를 내놨다. 1% 미만으로 추정된 잠재 성장률을 추월한 것인데, 잠재 GDP와 실제 GDP의 차를 말하는 아웃풋 갭은 플러스일 때 인플레이션의 신호로 해석된다. 팬데믹 동안 상승했던 실업률도 2.5%로 감소했고, 구직자 수에 대한 구인 건수의 비율인 유효구인배율은 1.28을 기록했다. 무엇보다 현 정책의 핵심인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이 일본은행의 목표인 2%를 초과 달성하며 현재 약 3%에 도달했다. 30년 만에 발생한 인플레이션이 투자를 촉진하자 주가 역시 버블 이후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또 계속된 엔저에 힘입어 수출 기업의 수익 개선과 관광산업의 회복이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지표가 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연일 나오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동인이 실제로는 ‘선순환 구조’가 아닌, 극단적 엔화 약세로 인한 수입 비용 상승과 세계적인 원자재 및 에너지 가격 상승이라는 것이다. 이는 물가가 임금보다 빠르게 상승하는 원인이 돼 실질 임금이 감소하고 소비를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난 10월 일본의 실질임금과 가계 지출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3%, 2.5% 감소했다. 이런 상황은 생활비 부담이 커진 일본 국민의 불만과 정책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키고 있다. 엔화 가치의 극단적 하락은 미일 간의 금리 차이가 벌어지며 발생했는데, 지난해 금리를 급속하게 인상한 미국에 반해 일본은 YCC(Yield Curve Control·수익률곡선 제어 정책)를 통한 초저금리를 일관한 것이 원인이다. YCC는 일본은행이 10년 만기 국채를 대량 매입해 수익률이 대체로 0%대에 머무르도록 유도하는 방식이다.

뒤처진 임금 탓’ 일본은행, 인플레이션 목표 달성했지만 금융 정상화 미

균형점을 정확히 짚어내기는 어렵지만, 현재 엔화 환율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라는 점은 명확하다. 국가 간 비교를 통해 통화의 실제 구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은 현재 2020년의 71.62% 수준에 불과한데, 이는 해외에서 같은 물건을 구입해도 이젠 약 30%를 더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다. 환율은 GDP에도 영향을 미쳤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의 명목 국내 총생산은 독일에 역전돼 세계 4위로 내려앉았다. 실질 GDP가 성장했음에도 환율 탓에 달러화를 기반으로 집계하는 명목 GDP는 하락한 것이다. 이렇듯 여러 문제가 불거지자 일본은행이 YCC 정책을 축소·폐지하고 통화정책 정상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엔화 가치 하락이 미·일 간의 금리 차에서 비롯된 만큼, 미국의 금리 인하 전망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환율의 향방이 일본은행의 손에 달렸다는 시각이 퍼지면서다.

그럼에도 일본은행은 지난 12월 임금과 물가 간의 격차를 이유로 내세워 초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YCC 목표를 기존 0.5%에서 1%로 약간 완화하기는 했지만 정상화는 시기상조임을 못 박았다. 이는 임금인상률이 물가 인상률을 넘어서야 ‘선순환’이 완성되며 디플레이션에서 비로소 풀려날 수 있다는 인식에서 기인한다. 지난 11월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일시적으로 완화하겠다는 목표로 발표한 정책이 다소 엉뚱하게도 ‘디플레이션 완전 극복 재정 패키지’로 불린 것 또한 이런 시각을 비추고 있다.

일본의 소비자 물가 인플레이션이 당초 목표했던 2%를 초과한 지금, 일본은행은 금융 정상화를 시작하지 않을 명분이 부족하다. 아직 물가를 넘어서는 임금 인상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노동 생산성과 노동 시장 조건 등의 실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실질 임금을 통화정책으로 조절할 수는 없다는 것이 보편적인 시각이다.

국채비만 1년 예산 4분의 1, 금리 올라도 이자 감당할 수 있나

앞서 언급된 ‘디플레이션 완전 극복 재정 패키지’ 또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땜질 처방이라는 빈축을 사고 있다. 패키지에 지난 2022년 6월 기시다 총리가 내건 기치 ‘새로운 자본주의’와 결을 같이 하는 생산성 향상 조치들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다. 반도체, 전기자동차 등 국내 산업의 투자 촉진과 디지털화 촉진을 위한 정책들이다. 하지만 중점은 인플레이션의 충격을 빠르게 완화해 일본 국민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에 있다. 패키지의 골자는 전기·가스 요금과 휘발유 임시 보조금 기간 연장, 1인당 4만 엔(약 35만원) 정액 감세, 그리고 임금 인상 보조금이다.

이러한 일회성 조치들은 일본 경제의 공급 측면을 실제로 개선하진 못했다. 가계와 노동자의 부담을 일시적으로 덜었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뜻이다. 무엇보다도 해당 패키지는 이미 위태로운 일본의 재정 건전성을 더 악화시키고 있다. 2022년 일본은 GDP의 6.4%에 달하는 재정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17조 엔(약 154조489억원)을 넘어서는 정책 규모를 감당하기 위해 일본 정부는 13조 엔(약 117조6,292억원) 대의 예산을 추경해야 했다.

감세 정책으로 세수까지 줄어드는 마당에 재원은 어떻게 마련했을까. 일본 정부는 추경안의 약 70%를 국채 발행으로 충당했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되고 10년 새 약 300조 엔(약 2,714조5,200억원)이 증가한 일본의 국가 부채는 계속 불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2024년 일본의 국채비는 세출의 4분의 1가량인 27조80억 엔(약 244조3,791억원)으로 역대 최대 금액이다. 국채비는 상환해야 할 국채 원금과 이자 지급액을 합한 금액을 뜻하는데, 일본 정부는 YCC 정책을 통해 초저금리를 유지하는 동안 이자 비용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정책 목표대로 임금이 꾸준히 상승하며 인플레이션이 가속화하면 금리가 올라 국채 이자 비용은 배로 불어난다. 이뿐만 아니라 국채 가격의 하락을 불러 엄청난 양의 장·단기 국채를 흡수해 온 일본은행이 대규모 평가손을 떠안게 된다. 행여 일본은행의 지원이 끊기기라도 하면 정부의 자금 조달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이 자명하다. 이렇듯 공급 측면의 근본적 개선을 외면한 정책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부작용을 쏟아내는 가운데, 경제 정책 구조 개혁 없이는 ‘선순환’이 아닌 부채의 ‘악순환’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가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원문의 저자인 마사히코 타케다(Masahiko Takeda)는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의 크로포드 공공 정책 대학원 오스트레일리아-일본 연구 센터(Australia–Japan Research Centre at the 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The 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의 시니어펠로우입니다.

masahikotakeda_ANU_20240111
마사히코 타케다/사진=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

영어 원문 기사는 Japan’s economic balancing act around trends that are unsustainable | East Asia Forum에 게재되었습니다.

Similar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