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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앞에 무릎 꿇는 정치권, 총선 의식한 ‘핀퓰리즘’에 증권가는 ‘황당’

2024 총선 눈앞으로, 정치권의 증권가 '시녀화' 가속
핀퓰리즘 드라이브 거는 정치권, 금융위원장도 '외줄타기'
질러놓고 사후처리는 '쉬쉬', 공허한 정치권의 외침
주식-양도세
상장주식 양도세 과세 대상 기준 개정(안)/출처=기획재정부

총선이 눈앞으로 다가오면서 정치권의 시민을 향한 구애가 늘었다. 최근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개미 민심 잡기다. 개미들은 자본시장에 대한 정부의 조치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와 연결 지어 언급하는 경우가 잦은 편인데, 이를 간파한 정치권은 개미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책을 연달아 내놓고 있다. 다만 그런 만큼 증권가는 더욱 시끄럽기만 하다. 증시 폐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부가 대주주 양도세 완화를 언급하며 시장 혼란이 가중된 탓이다. 더군다나 증권가에선 확실치 않은 공매도 전면 금지 정책으로 인해 증권가의 ‘노예화’가 더욱 가속했단 우려도 쏟아지는 중이다.

정부, 총선 앞두고 개미 눈치만 ‘살살’

21일 정부가 대주주 양도소득세 완화 방안을 내놓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포진한 개미들을 중심으로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찍겠다”는 여론이 부쩍 늘었다. 개미를 잡겠단 정치권의 속셈이 먹혀든 셈이다. 다만 증권가에선 정부와 정치권의 이 같은 ‘핀퓰리즘'(파이낸셜 포퓰리즘)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자본시장의 제도와 원칙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좌우되면 시장 안정성이 저하돼 모두가 손해 보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공매도 금지 조치에 대해서도 부정적 여론이 높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6일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그간 개미들이 공매도에 대해 “개인과 외국인·기관에게 서로 다른 규정이 적용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주장해 왔기에, 정치권에선 공매도 금지에 따라 정치적 이익이 상당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막상 발표하고 보니 해당 방안에 대한 개미들의 여론은 다소 좋지 않았다. 이에 정부와 정치권이 택한 방법은 ‘무시’다. 한창때 공매도 금지 조치를 거론하던 정치인들은 이제 다른 곳에 시선을 돌렸고, 정부 또한 관련 논제를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나마 금융당국이 무차입 공매도 적발을 위한 전산 시스템 구축 문제만을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 한 증권가 관계자는 “상환기간과 만기 문제에 대해서는 금융당국이 추가 검토를 멈추고 국회 논의를 지켜보는 중”이라며 “사실상 금융당국이 개선안 추진을 중단했다”고 전했다. 이렇다 보니 비판의 목소리는 더욱 커지는 중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제 와서 관련 문제를 쉬쉬하고 있다는 건 결국 공매도 전면 중단 조치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단기적 인기를 얻기 위한 성급한 결정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라며 “외국계 증권사의 무차입 공매도 적발 등으로 개인의 불만이 폭발하자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이 성급하게 거래 자체를 막은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발표한 대주주 양도세 기준 상향 조정에 대해선 증권가 차원에서도 정부 방침에 공감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2000년 100억원에서 시작해 2020년 10억원으로 대주주 기준이 급격히 낮아지며 부작용 우려가 쏟아졌기 때문이다. 연말에 특정 종목 보유금액이 이보다 많은 사람은 차기 과세 연도에 이 종목 매매수익에 대해 20~25% 양도세를 내야 하는데, 이를 피하려고 10억원 이상 보유자가 연말에 매도 물량을 쏟아내 주가를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오랜 논란거리 중 하나였다. 다만 제도 개선에 공감하는 이들도 “이 조치가 내년 총선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견엔 동의하는 분위기다. 한 증권가 관계자는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도 아닌데 자본시장과 관련된 이례적 조치를 이렇게 연달아 내놓는 경우가 있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의 개인 투자자 수가 1,400만 명에 달한다는 점, 그리고 곧 총선이 다가온다는 점 등을 언급하지 않고는 이 같은 상황을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견제 없는 ‘핀퓰리즘’, 증권가 고심 깊어져 가기만

문제는 이런 핀퓰리즘 행태를 견제할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워낙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다 보니 증권사들은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꺼리는 모양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마저 공매도 금지에 미온적이었던 까닭에 경질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공무원들이 숨죽이며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에 대해 한 여의도 전문가는 “핀플루언서(파이낸셜 인플루언서)가 개미의 여론을 주도하며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붓고 있다”며 “주요 인물들은 개미 지지자에게 후원금을 받는 데다가 신당 창당 방침까지 밝힌 상황이어서 자본시장이 점점 혼탁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전했다. 증권가 관계자들은 “시장이 이렇게까지 권력의 시녀가 된 적이 있었나 싶다”며 한탄하기도 했다.

핀퓰리즘에 따른 증권가의 ‘시녀화’는 비단 여당만의 문제는 아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밀고 있는 ‘횡재세’ 또한 관련 논란에서 자유롭기는 힘들다. 횡재세란 기업이 외부 요인으로 의도치 않게 벌어들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란 취지로 징수하는 세금이다. 횡재세의 도입 명분 자체는 뚜렷한 편이다. 기준금리 인상기를 틈타 대출금리를 올려 ‘이자 장사’에 힘쓴 시중은행이 올해도 역대 최대 규모의 이익을 얻을 것으로 전망되면서 홀로 웃고 있는 은행권에 철퇴를 내려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들끓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당이 횡재세를 내건 시기와 방법론에서 논란이 솟아났다. 민주당은 국제유가가 치솟던 지난해 에너지 업계를 둘러싸고 전개된 횡재세 논의엔 미온적 태도를 보였으나, 올해 은행권에 대해서만 갑작스레 강경 발언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제출한 횡재세 법안도 이론의 여지가 많다. 당장 초과이익의 산정 방법, 횡재세 납부 방법과 절차, 미납 시 조치사항 등 디테일한 항목에 대한 논의가 일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증권가의 고심을 기우로 치부해선 안 되는 이유다.

“목소리 크면 끝”, 여론에 휩쓸리는 정치권

여론에 휩쓸려 제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정치권의 모습에 답답함을 표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특히 일각에선 공매도 금지 조치에 일정한 효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설에서 “한국의 공매도 규제는 증시에 해롭고 효과도 없다”며 국내 현황을 강하게 힐난했다. FT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등으로 인한 약세장이 펼쳐질 때마다 공매도가 주가 폭락의 주범으로 지목돼 왔지만, 공매도를 금지하자는 주장에는 설득력이 전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에 일부 회의론자들은 총선을 앞두고 한국 증시 주도 세력이 된 개인 투자자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며 “오히려 건강하고 투명하고 자유로운 시장의 핵심은 공매도를 포함한 다양한 주식 트레이딩 전략”이라고 역설했다.

FT가 거론한 공매도의 순기능은 가격 발견, 유동성·리스크 관리. 증시 버블 제거 등이다. FT는 지난 20일 월가의 전설적인 공매도 투자자 짐 차노스가 설립 약 40년 만에 자신의 헤지펀드를 폐쇄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공매도 세력은 가격이 하락하지 않으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어 집중적인 리서치로 보다 공정한 평가로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2011년 하미드 메란 뉴욕 연은 경제학자의 연구를 소개하며 지난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동안 금융주 공매도를 금지했던 미국 등 13개국에서 금융주 공매도 금지 조치가 금융주 주가 하락을 늦추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목소리 큰 이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설익은 정책을 내걸곤 사후처리는 쉬쉬하는 정치권의 일관적인 태도, 포퓰리즘의 전형이다. 정치권의 구애가 공허하게만 들리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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