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역발전시키는 이기적인 노조 NO! 상식적인 요구로 사회 균형 추구하는 노조 YES!

정당-노조 간 건강한 정치적 관계 부각해 노동정치 이룬 미국과 일본 한국의 정당-노조 간 ‘비밀스런’ 관계로 인해 국민 절반은 노조 방향성에 ‘불신’ 대부분이 노동자로 구성된 현대사회, 노조의 건강성 회복이 시급한 이유

27일 국회미래연구원(이하 미래연구원)이 한국, 미국, 일본의 노동정치를 비교분석한 브리프형 보고서 ‘국가 미래전략 Insight’를 발간했다. 미래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노동정치를 ‘정당과 노동조합의 관계에 의해 노조가 정책 형성에 참여하는 제반 정치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경제활동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임금 생활자가 노조를 통해 자신의 요구와 이익을 정치과정에 투입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해나가는 것이 노동정치의 핵심인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래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노동정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당과 노조 간 관계가 불분명해 노조에게 공식적인 정치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전무한 탓이다. 이에 미래연구원은 미국과 일본 노조의 사례를 들어 국내 노동정치에 대한 개선을 강조했다. 이외에도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현 노조의 이미지를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단 의견도 더했다.

사진=민주노총

미국의 노동정치, 노조와 민주당의 강한 결속

미국의 노동운동은 19세기 중엽 시작됐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무당파주의(Non-partisanism)를 표방했으며, 미국 내 어떤 정당과도 유착관계를 갖지 않았다. 하지만 1920년대 말 경제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사회경제적 위기 타파를 위해 민주당과 루스벨트 대통령 중심으로 연대를 시작했다.

현재 미국 노동조합과 민주당은 상부상조하는 관계다. 미국 노조는 민주당의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받은 기부금의 약 90% 이상을 민주당에 제공한다. 가장 최근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20년에는 그 금액이 2억6,102만5,526달러(환율 1,200원 기준, 약 3,132억원)에 달했다. 또 정당 조직을 대신해 선거 유세 활동을 진행하기도 했다.

미국 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은 민주당은 노조가 요구하는 노동·복지정책을 당론으로 내세워 추진한다. 실제로 지난 1933년부터 1969년까지 다수당에 속했던 민주당은 교육, 주거, 의료 등 사회보장을 강화하고 노동권 보호 등 노동계급 전반에 이익이 되는 정책을 입법하고 진행했다. 미래연구원은 미국 노조의 직·간접적 도움을 받은 바 있는 민주당 상·하원 의원의 75% 이상이 친노동정책을 지지하기 때문에 정당과 노조 간 쌍방 간 연계가 구조화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노동정치, 온건한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노조에 호응하는 정당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배 후 미군정에 의해 일본 노동조합법이 입법되면서 노동 기반 좌파 정당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됐다. 지난 1955년부터 1989년까지 일본 노동조합은 당시 제1야당이던 일본사회당과 연계해 투쟁적, 계급적 운동을 지향했다. 하지만 1989년 제도 내 온건한 노동운동을 지향하는 렌고(連合·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등장하면서 노동정치는 완전 개편됐다. 현재 렌고는 1990년 몰락한 일본사회당을 제치고 제1야당으로 떠오른 일본 민주당을 기축으로 활동하고 있다.

앞선 미국의 사례처럼 렌고 역시 선거를 치르기 위해 상당 수준의 정치 후원금이 필요한 일본 민주당 의원들에게 기부금을 제공하며 상생관계를 유지했다. 미래연구원에 따르면 2006년에서 2008년까지 3년 동안 렌고가 민주당 국회의원에 35명에게 후원한 돈은 약 11억 엔(약 11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일본 아사히 신문은 2010년 일본 참의원 선거 이후 “일본의 당 조직은 몹시 허약해 노조에 의존하지 않으면 선거를 치를 수조차 없다”며 “돈도 조직력도 없는 초선 후보자일수록 노조의 전적인 지원이 있어야 당선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렌고의 도움을 받은 일본 민주당은 노동 기준법 개정, 파견법 개정 등을 통해 렌고의 요구사항을 수용했다. 실제로 일본 민주당이 집권한 2009년 9월부터 3년 3개월간 렌고가 요구한 고용 및 복지정책은 대부분 입법되거나 집행됐다. 이외에도 일본 민주당은 참의원 비례선거구의 8~10석을 렌고의 산별 후보에 제공하고, 렌고 출신 인사도 적극적으로 등용하는 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노조와 정당의 공식적인 관계를 틀어막는 한국의 노동정치

한국은 민주화 이후 민주노조운동이 활성화됐다. 국내 대표 노조 중 하나인 한국노총은 활발한 정치활동을 벌이며 집권 여당과 결속해 요구를 충족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집권 당시 노정 갈등이 지속되자 집권여당과의 정책연대 파기를 선언하고 당시 제1야당이었던 민주당과 연대하기 시작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문재인 후보 지지를 결정하며 현재까지 민주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고수하고 있다.

즉 미국, 일본과 같이 한국 노조 역시 특정 정당과 상당한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정치자금법은 미국·일본과 달리 특정 단체의 직접적인 정치자금 기부를 금지하고 있어, 공식적인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없다. 물론 상당한 양의 정치자금이 비공식적으로 노조 조합원의 기부를 통해 충당되는 건 사실이다. 지난 6월 한 더불어민주당 사무국 관계자는 “여야를 불문하고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노조 출신 의원은 상당수 정치기부금을 조합원의 기부로 채우고 있다”고 밝혔다.

나아가 한국노총은 선거 운동에도 일부 기여한다. 한국노총은 지난 2020년 21대 총선 당시 일명 ‘4.15 총선 승리 실천단’을 구성해 약 2주간 매일 선거운동을 전개한 바 있다. 이에 각 정당은 노조 출신 의원을 꾸준히 배출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19대 국회에서는 여야를 포함해 6인, 20대 국회에서는 10인, 21대 국회에서는 9인의 한국노총 출신이 의석을 차지했다.

이들은 노동자와 노조의 이해와 요구를 투입하고 반영하는 창구로써 기능한다. 미래연구원은 특히 국내 노조는 미국과 일본에 비해 높은 수준의 비공식적 지분을 갖고 있으며, 민주당에서는 공식적인 지분도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각 정당은 노동계가 요구하는 ▲ILO핵심협약비준안 ▲가사근로자보호법 ▲사회서비스원법 ▲삼성그룹 노조 활동 등 노조 공식 인정 ▲법인 택시 등 운수 노동자에 재난지원금 추가 지원 등의 노동 친화 정책도 추진했다.

더불어민주당과 한국노총 간 연계를 정리한 도식/출처=국회미래연구원

민주주의에서 노조 역할은 분명하지만, 새로고침 필요해

하지만 노동자의 이해가 정치영역에서 대표되는지의 여부, 노동 세력이 공공정책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불확실하다. 미래연구원은 우리나라 노조에는 미국·일본과 달리 조직적이고 공식적인 구조적 상호작용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노조법상 노조가 공식적으로 정당에 제공할 수 있는 물적·인적 자원이 금지돼 연계성의 한계가 명확한 탓이다.

심지어 정당이 노조에 제공하는 이익도 관련 역사가 짧아 수준을 특정하기 어렵다고도 꼬집었다. 실제로 국민의힘 내의 한국노총 출신 노동위원회는 선거 때 말고는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며, 민주당에서도 한국노총 출신이 전체권리당원의 1% 수준으로 마땅한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노동정치 현장에서 노조가 본연의 역할을 못 하는 셈이다.

다행히 시민들은 여전히 노조의 역할과 정치과정에서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 4월 한국비정규노동센터는 ‘비정규직 문제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만 18세 이상 시민 2,000명 중 79.6%가 ‘노조는 필요하다’는 질문에 긍정적으로 응답했다고 전했다. 다만 노조의 방향성은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의 51.4%가 ‘노조의 방향성이 간부나 특정 노동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에 미래연구원은 노동정치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하고, 정당-노조-기업-시민 간 균형 있고 발전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노조와 정당의 공식적 연계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윤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 부연구위원은 “이제 노조는 단기적 이익이나 원칙적 요구수준을 넘어 중장기적인 노동정책을 요구해야 한다”며 “‘노조와 정당 간 선거 지원’과 ‘공공정책’이란 상호 정치적 교환이 안정적으로 구조화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또 정부에 요구를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시민들에게 피로감을 선사하는 총파업·거리 점거·고성방가 등의 시위 방식을 자제하고, 합리적이고 정당한 방법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한 경제 전문가는 영국 노조가 사측과 입금 협상을 진행할 때 경제학 생산 함수 중 콥-더글라스(Cobb-Douglas) 함수를 사용해 협상 제의를 보낸다고 밝혔다. 영국 노조가 해당 함수를 통해 ‘최적의 생산량을 내기 위해 노동과 자본의 적절한 결합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만들어 임금 인상을 요구한단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툭하면 파업에 삭발을 일삼는 노조가 아닌, 영국 노조처럼 세련되고 합리적인 방법을 사용해 의견을 설득시키는 노조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노조의 필요성과 방향성에 공감하는 시민들을 늘려야 한다는 게 정 부연구위원의 의견이다. 업무 방해가 아닌 ‘상생’을 추구하고,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한 불법 행위가 아닌 ‘차분한 대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한국 노조를 새로고침할 움직임에 기대가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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