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충당금 최대 2배까지 늘어난다”, 고금리 기조 속 높아진 부실 위험 대비

금융당국 ‘리스크 관리 강조’, 기존 충당금보다 1.3~2배까지 더 쌓도록 개정 금융위기 등 ‘이례적 위기 상황’까지 고려해 새로운 ‘부도율’ 적용 ‘높아진 부실 위험, 주요국 대비 부족한 위기 대응력’ 등이 개정 배경

금융당국이 은행권이 부실을 대비해 쌓는 대손충당금을 크게 늘릴 전망이다. 은행의 대손충당금 산정 체계를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나 글로벌 금융 위기에 준하는 수준으로 강화해 리스크 요인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나아가 미국, 유럽 등 주요국 대비 부족한 우리나라 은행권의 부실 위기 대응력을 갖추기 위한 제도 개선의 일환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당국, 은행권 대손충당금 산정 체계 강화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최근 대손충당금 관련 개정 지침을 시중은행에 전달했다. 이번 지침은 지난 3월 이후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은행제도개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마련한 안이다.

향후 은행권은 충당금 적립 시 필요한 예상손실을 보다 보수적으로 산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은 ‘부도율(Probability of Default, PD)×부도시 손실률(LGD)×여신잔액(EAD)’으로 계산되는 예상손실 계산식에서 1년 후 부도율(PD) 활용 방식을 기존보다 최대 2배가량 높게 적용되도록 개편했다. 실제로 지난 25일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KB금융지주는 올해 2분기 충당금(신용 손실 충당금 전입액)을 3,769억원으로 설정했다. 이는 지난해 2분기(1,930억원)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그간 ‘은행권 부실 문제에 대비해야 한다’던 업계 안팎의 권고를 수렴해 당국이 직접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해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 10년간 저금리 기조 속에 시중 유동성이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더해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계부채와 연체율이 급증했다”면서 “계속되는 고금리에 경기 침체 우려마저 높아지자 당국이 직접 부실 위험에 대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럽은행감독청 소관 은행 68%보수적으로 부도율 산정

우리나라 은행들의 부실 위기 대응력이 유럽과 같은 주요국보다 현저하게 떨어지는 점도 이번 개정 지침이 적용된 또 다른 배경으로 꼽힌다. 그간 은행권 외곽에선 주요국 대비 널널한 국내 은행 부실 평가 기준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실제로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소관 은행 가운데 자체적으로 규제 목적 PD 이상의 부도율로 충당금을 계산한 은행 비중은 68%로 절반을 훨씬 웃돌았다. 반면 국내 은행들은 규제 목적 PD값 대신 자체적으로 책정한 경험 PD값으로 충당금을 쌓아왔는데, 심한 경우 경험 PD값이 규제 목적 PD값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경험 PD는 특정 기간 동안의 부실 추이를 종합해 다음 연도 예측 부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반면 대표 PD는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을 산정할 때 활용하는 ‘규제목적 PD’에 연동된 지표다. 통상 경험 PD값보다 최대 2배가량 높은 규제목적 PD는 과거 IMF 사태나 글로벌 금융 위기와 같은 위기 상황을 가정해 산출하는 보수적인 부도율이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3월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개최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실무작업반 제3차 회의’에서 은행권 손실흡수능력 제고를 위한 건전성 제도 정비방향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SVB 사태 이후 은행권 감독·규제 더욱 강화한 미국

미국 금융당국의 은행권 위기관리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미국은 은행의 부실채권을 포함한 모든 여신을 잠재적 위험군으로 설정해 충당금 적립 규모를 관리한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은행권의 총여신 대비 커버리지 비율은 1.49%로 국내 4대 시중은행 평균의 3배를 웃돈다. 같은 기간 신한·하나·우리·KB국민은행의 총여신 대비 커버리지 비율은 0.49%다.

아울러 미국 금융당국은 실리콘밸리 은행(SVB) 파산 사태 이후 은행권에 대한 감독 및 규제를 더욱 강화했다. 지난 3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발표한 ‘SVB에 대한 연준의 감독 및 규제에 대한 검증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당국은 향후 은행권 감독 및 규제 강화에 대해 △금리리스크 및 유동성리스크의 관리 강화 △매도가능증권에 대한 미실현 손익을 반영해야 하는 은행의 범위 확대 등 자본규제 정비 △스트레스 테스트 실시 대상 및 주기 재검토 △리스크 관리와 성과급이 적절히 연계되기 위한 은행 경영진 성과급제 개선 등을 제도 개선 방향으로 제시했다.

다만 일각에선 주요국과 우리나라의 대출 환경이 달라 단순히 특정 규제 체계로 위기 대응력을 비교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주택담보대출과 관련해 LTV나 DSR 등의 대출 관련 규제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러한 규제책이 미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단순히 특정 부실 위험 지표만으로 위기 대응력을 비교하기엔 나라마다 규제 환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한편 은행권은 이번 개정 지침에 따라 규제목적 PD를 사용하고 당국의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은행이 자체적으로 과거 대출 부도율을 고려해 설정했던 경험 PD와는 결과적으로 다르다. 시중은행들이 올 2분기 결산 시 충당금을 책정할 때 새 부실 지표를 사용하게 되면서 당장 이달 말 차례로 실적 발표를 앞둔 신한, 하나, 우리, NH농협 등 타 금융지주사들도 충당금 적립을 대폭 늘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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