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포럼] 동아시아 국가들의 헤징 정책과 경제 안보

상호의존성의 무기화, 경제 정책 선택의 지정학적 의미 증대 동남아 국가, 헤징을 넘어 지정학 질서 구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경제적 헤징 정책 성공 위해 상호운용적 ‘기술표준’ 마련 필요

[동아시아포럼]은 EAST ASIA FORUM에서 전하는 동아시아 정책 동향을 담았습니다. EAST ASIA FORUM은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Australia National University)의 크로퍼드 공공정책 학교(Crawford School of Public Policy) 산하의 공공정책과 관련된 정치, 경제, 비즈니스, 법률, 안보, 국제관계 및 사회에 대한 분석 및 연구를 위한 플랫폼입니다.

저희 폴리시코리아(The Policy Korea)와 영어 원문 공개 조건으로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최근 대외 정책으로 ‘헤징(hedging-위험회피)’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진 이유는 변화하는 미·중 관계에서 더 이상 ‘세력 균형’과 ‘편승’이라는 전통적인 안보 개념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행동 전략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돕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헤징은 그 정의에 대해 아직까지 학계의 합의가 이뤄지진 않았으나 복잡한 지정학적 현실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대안임은 분명하다.

Indonesia President Joko Widodo stands during the 42nd ASEAN Summit march in Labuan Bajo, East Nusa Tenggara province, Indonesia, 10 May 2023. (Photo: REUTERS/Achmad Ibrahim/Pool)
사진=동아시아포럼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보내는 경제적 신호의 중요성

이러한 맥락에서 헤징은 경쟁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주요 강대국들 사이에서 특정 일방을 선택하지 않고 협력·타협·거래를 통해 모든 나라와 최대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대외 정책 행위를 의미한다. 지금까지 각국의 안보 이익은 일반적으로 △무기 구입 △합동 훈련 △안보 조약 체결 등과 같은 정책적 선택에 의해 반영됐지만, 최근 들어 미·중 첨단기술 경쟁이 심화함에 따라 경제 영역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내리는 선택이 우방과 적국을 판가름하는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다.

지난 2018년 호주가 5세대(5G) 이동통신 사업에서 중국 IT 기업 화웨이를 제외하자, 중국이 이를 적대 행위로 해석해 호주·중국 간 무역 분쟁이 불거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당시 호주는 자국의 정보가 중국 공산당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네트워크 안보 차원의 조처였다고 항변했으나, 중국은 이를 자국을 향한 적대적 경제 행위로 간주하고 호주산 와인과 소고기 등 10여 개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법으로 보복하면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호주의 중국 배제를 반기면서도 정작 중국의 대(對)호주 무역 보복 조치가 이어지자 방관으로 일관해 국제 사회의 지탄을 받기도 했다. 결국 미국 편을 들어 준 호주만 피해를 본 셈이다.

무기화된 상호의존성과 미·중 양국의 행동

최근 들어 경제·군사 영역에서 증대된 상호의존성이 점점 무기화되기 시작하면서 일국의 지정학적 권력 및 취약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실제로 미국은 반도체 수출 제한을 통해 중국의 군사력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중국 역시 자국의 전략적 목표 추구를 위해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과의 양자 무역을 중단했다.

무기화된 상호의존성은 미·중 양국이 타국과 맺는 경제 관계의 안보·지정학적 영향에 대한 견제 강화를 의미하기도 한다. 미·중 양국은 자국의 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영역 및 행동의 범위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트럼프 행정부는 “경제 안보가 곧 국가 안보”라고 천명하는가 하면, 바이든 행정부의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도 “핵심 기술 영역에서 가능한 최대의 우위 확보가 미국 안보의 필수”라며 “상호의존성이 무기화되는 현시점에 영역 간 경계를 분명히 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는 진단을 내린 바 있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미국에 비해 모든 사안을 정치화하는 데 훨씬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중국 국력이 확대됨에 따라 국가 이익 역시 확장되는 추세지만, 공산당이 사실상 ‘일당 독재 체제’를 형성하고 있는 중국에서 국가의 이익은 곧 공산당 이익이나 다름없다. 경제 정책을 포함해 공산당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모든 대내외적 위협이 중국 국가 안보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헤징을 선택하는 이유

한편 미·중 경쟁의 진앙지로 꼽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자국의 경제 발전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지정학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런 만큼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미·중 패권 경쟁 상황에서 어느 국가의 눈 밖에도 나고 싶어 하지 않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로선 헤징 정책 이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도가 없다. 그러나 상호의존성의 무기화는 더 많은 경제·기술 정책들이 미·중 양국에 의해 제로섬으로 인식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나아가 동남아 국가들의 입장에서는 자국의 의도와 무관하게 정책 결정 운신의 폭이 축소됨을 뜻한다.

지금껏 동남아 국가들은 중국 제품 수입에 있어 △저렴한 비용 △빠른 출고일 △품질 등만 고려했을 뿐 자국의 선택이 불러올 안보 영역의 반향에 관해서는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하고 있는 지금, 이러한 동남아 국가들의 선택은 미국과의 안보·경제 협력을 저해하는 비우호적 행위로 해석되고 있다. 반대로 네트워크 안보에 대한 우려로 중국 제품을 배척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적대 행위로 간주됨에 따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됐다.

중단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은 디지털 기술, 첨단 제조 및 첨단 소재, 에너지와 바이오 기술을 포함한 여러 핵심 기술 영역에서 디커플링(탈동조화) 및 경쟁 심화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미·중 간 기술적 상호의존이 불러오는 ‘안보-기술 딜레마(기술적 상호의존이 심화할 경우 안보가 저해되는 상충관계)’를 고려할 때 현재의 디커플링은 미·중 간 장기 균형을 달성하기 위해 필수 불가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헤징 정책의 명(明)과 암(暗)

헤징 전략을 채택한다는 것은 부분적으로 디커플링 된 국제 경제 체제에서 미·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을 고수함을 의미한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강대국들이 경제적·기술적으로 보호주의 행태를 강화하는 상황에서 헤징을 성공적으로 이뤄낸다는 것은 상당한 협상력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과정임이 틀림없다. 그런 만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기술 공급 주체 및 기술표준을 신중하게 채택해야 한다. 핵심 기술 경쟁이 심화하고 디커플링이 진행되는 미·중 간 패권 경쟁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필연 제로섬적 요소를 가지게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헤징 전략에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페니 웡(Penny Wong) 호주 외교부 장관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그들의 외부 환경을 형성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는 양자택일의 대안으로 선택되는 헤징 전략이 자칫 동남아시아 국가들을 수동적 주체로 전락시켜 자국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지역 질서를 형성할 지정학적 크리티컬 아워를 놓치게 만들 수 있다는 진단에서 비롯된 발언이다. 비록 정책 대안으로서 매력이 상당할지라도, 헤징 전략만 고수하기보다는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위한 방안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상호 운용성을 갖춘 기술표준의 필요성

특히 경제적 헤징 전략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기술표준이다. 기술표준은 역사적으로 강대국들에 의해 개발 및 전파된 것으로, 최고의 연구진들이 국제 기술표준 개발기구에 참여하며 해당 국적 기업들이 제품에 기술표준을 적용·판매하면서 국제화된 것이다. 기술표준의 핵심은 ‘상호 운용성’으로, 신제품 및 신기술이 기존 체제와 연결될 수 있도록 상호운용성을 보장해야 한다.

그러나 디커플링의 시대에 있어 상호운용성은 폐쇄적이고 단편화된 시스템에 밀려 설 자리를 잃고 있다. 결국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헤징 전략 성패는 개별 국가 또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차원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받지 않도록 하는 ‘포괄적인 기술표준’의 보급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conomic security and hedging in Southeast Asia

The study of hedging emerged because the traditional security concepts of balancing and bandwagoning are insufficient for understanding how smaller states are responding to US–China rivalry. While there is no scholarly consensus on a definition, hedging offers an alternative approach to categorising the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hoices exhibited by Southeast Asian countries.

Indonesia President Joko Widodo stands during the 42nd ASEAN Summit march in Labuan Bajo, East Nusa Tenggara province, Indonesia, 10 May 2023. (Photo: REUTERS/Achmad Ibrahim/Pool)

In this context, hedging means sending signals that generate ambiguity over the extent of a state’s shared security interests with rival major powers, representing its interest in maintaining positive relations with both. While security interests are normally reflected in policy choices like purchasing weapons, joint training exercises and security treaties, Washington and Beijing increasingly see economic policies as signals of friendship or animosity.

Australia learnt this lesson in 2018 when it excluded Chinese company Huawei from its 5G network. Canberra claimed that this decision only concerned internal network security, but Beijing understood it not only as a signal of lack of trust but of hostility. Conversely, it was praised by then-US president Donald Trump.

Those governments that have followed Australia typically share fewer security interests with China compared with those utilising Huawei’s 5G technology. Economic policy can now be a meaningful indicator of security alignment.

Economic and technological connectivity is increasingly being ‘weaponised’ and is becoming a source of geopolitical power and vulnerability. The United States can affect Beijing’s battlefield capabilities by restricting semiconductor technology, while China has disrupted multiple bilateral trading relationships, including with key US allies, in pursuit of strategic aims.

Weaponised interdependence means governments are wary of the national security and geopolitical implications of existing and potential economic relationships. How governments manage these economic relationships offers insight into their underlying security interests.

Washington and Beijing are expanding the scope of what policy domains and behaviours affect national security. The Trump administration claimed that ‘economic security is national security’, while US President Joe Biden’s National Security Advisor explained that maintaining ‘as large a lead as possible’ in certain technologies was a national security imperative.

The Chinese Communist Party is even more expansive in its ‘securitisation of everything’. China’s interests as a rising power are naturally expanding, but its political system means that the Party does not separate its interests from the nation’s. Hence any behaviour — including economic policy — at home or abroad that potentially affects the Party’s political legitimacy is considered a threat to China’s national security.

Southeast Asian states want a stable geopolitical environment to focus on their economic development. They do not want to be forced to ‘take sides’ in any hegemonic rivalry whereby Washington or Beijing could conclude that the smaller state’s security interests oppose theirs.

But if weaponized interdependence means more economic and technological policies are perceived as zero-sum by great powers, the policy space for hedging shrinks regardless of the smaller state’s motivation.

A government might choose Chinese telecommunications providers purely based on cost, speed of rollout and quality, and be relatively unconcerned about national security risks. Yet Washington might assess this as compromising defence or economic cooperation and step back. Alternatively, Beijing may judge as hostile decisions to exclude Chinese providers based on network security risks.

Over the short-to-medium term, Washington and Beijing will continue their partial decoupling and vigorous competition across a range of emerging and critical technologies. These may include digital technologies, advanced manufacturing and materials, energy and biotechnology. Given the perceived vulnerability of technological interdependence by both sides — a technology security dilemma — partial decoupling between the superpowers is probably needed for longer-term strategic equilibrium.

Maintaining a hedging strategy will require Southeast Asian states to locate themselves economically within a partially decoupled system in a way that avoids taking sides. This will be challenging, especially as the great powers build walls to separate themselves economically and technologically.

Southeast Asian governments will have to make choices regarding who provides technology products and the standards embedded within them. These choices may have a strong zero-sum element.

Australia’s Foreign Minister Penny Wong argues that regional states should be confident in exercising their agency to shape their external environment. Hedging, especially to avoid taking sides, risks sidelining Southeast Asian states at arguably the most consequential geopolitical moment since their independence. Even if hedging is preferred, policymakers must be creative to shape the regional order actively and positively.

One area where economic hedging may have a real impact is critical technology standards. Standards are historically developed and propagated by the most powerful countries. Their experts dominate international standards-making bodies and their companies embed these standards in their products, which purchasers then adopt by default.

Fundamental to technological standards is interoperability — meaning that systems are compatible with one another. Technology standards must support interoperability by enabling the development of new products and technologies that can connect with existing systems. But in an age of technological decoupling, interoperability may be yielding to closed and fragmented systems.

Individually or working collectively through ASEAN, hedging by Southeast Asian states may require the promulgation of technology standards that do not force countries to choose one technology ecosystem over another.


원문의 저자는 Darren J. Lim 호주국립대학 정치외교학부 부교수입니다. 본 기고문은 지난 5월 1일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시행된 ‘동아시아 지역 지정학 업데이트(Southeast Asia Regional Geopolitical Update)’ 발표를 바탕으로 작성됐습니다.

원문의 저자인 Dr Darren J. Lim/사진=호주국립대학교(AN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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