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신산업 규제 개선’ 방안 제시, 잘못 만들고 뒤늦게 고치는 ‘악순환’

지난 4월까지 1,027건 규제 완화한 尹 정부, 신산업 분야 30개 규제 추가 완화 불합리한 규제로 하루하루 지쳐가는 기업들, “애초부터 잘 만들었으면 됐다” 비판도 이전 정부부터 추진한 ‘네거티브 규제’, 규제 체계 근본부터 바뀌어야 할 때


정부가 신재생에너지와 의약·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의 규제 30건을 완화한다.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는 규제개혁위원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의 ‘신산업 기업애로 규제 개선 방안’을 논의·확정했다고 15일 발표했다.

이에 따라 올해 말부터 태양광 발전 모듈 설치 방향 규제, 개발용 자율주행 자동차의 임시 허가 등 업계 불편을 야기한 규제가 대폭 완화될 예정이다. 한편 업계에서는 애초 현장 사정을 청취하고 합리적인 수준의 규제를 만들었다면 규제 완화에 긴 시간을 쏟을 필요도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태양광 발전·바이오·자율주행 등 신산업 규제 완화

이번 개선 방안은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의 자문기구인 신산업규제혁신위원회에서 현장 기업들이 직면하는 애로사항을 파악해 마련했다. 위원회는 지난 1월부터 건의 과제를 발굴해 왔으며, 개선 방안 도출을 위해 소관 부처 및 기업과 16차례의 논의를 진행한 바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올해 12월부터 중대 질환자의 치료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우수한 첨단바이오의약품의 신속처리 대상을 확대하기로 했다. 암과 같은 중대 질환의 치료를 위해 신규 개발된 첨단바이오의약품이 기존 치료제에 비해 현저한 개선 효과를 가진 경우 허가·심사 시 ‘신속처리 대상’으로 지정하는 것이 골자다.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양광 발전 모듈의 설치 방향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기존 태양광 발전 모듈은 정남향 설치가 원칙이었으나, 지침 개정 이후에는 최적의 발전효율을 낼 수 있는 방향일 경우 동·서향으로도 설치할 수 있게 된다.

사진=pexels

국토교통부는 대전의 비행 금지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대전은 덕진동의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를 방호하기 위해 인근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대전시 공역 대부분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드론 산업 활성화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여러 차례 제기된 바 있다.

개발용 자율주행 자동차의 임시 운행 허가와 관련된 규제도 완화된다. 정부는 현재 임시 운행 허가를 받은 자율주행차와 동일한 시스템이 탑재된 동일 차종 차량에 대한 허가 절차를 간소화했다. 하지만 센서 등 일부 부품을 교체해 성능이 개선될 경우 처음부터 모든 허가 절차를 다시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이에 국토부는 오는 10월 관련 규정을 개선, 시험 운행 등 절차를 면제하고 최소한의 서류 검사만 한다는 방침이다. 이 밖에도 △친환경 자동차 보조금 지급 절차 간소화 △의료기기 갱신 시 제출 자료 간소화 △지능형 로봇 전문 기업 선정 요건 완화 등 총 30건의 신산업 규제가 완화될 예정이다.

혁신해야 할 규제라면 애초부터 없는 게 낫다

‘규제 혁신’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 4월 말 기준 윤석열 정부가 완료한 규제 개선 과제는 법령 개정 등을 마치고 현장에서 시행된 건을 기준으로 1,027건에 달한다. 문화재 보존 지역 규제 완화로 경기 광주의 조선백자 가마터 인근의 한 중소기업이 사무실을 증축하는 데 성공했으며, 전남 광양제철소는 입지 규제 완화를 통해 신성장산업(이차전지, 수소)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업계는 규제 완화에 대한 반가움보다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에 대한 갑갑함을 호소한다. 1,027건의 규제가 완화됐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그동안 현장에서 불편을 빚었던 비효율적인 규제가 최소 1,027건에 달했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어차피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철폐해야 할 불합리한 규제라면 애초에 ‘만들질 말아야 한다’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정부는 규제 혁파를 외치며 ‘언젠가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불합리한 규제로 인해 피해를 본 기업 입장에서는 기약 없는 정부의 태도가 갑갑할 뿐이다. “정부를 믿고 기다리게 하지 말고, 애초에 기다릴 일을 만들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한탄이 나오는 이유다. 애초 규제 방안을 내놓을 때부터 산업 현장의 상황을 세심하게 살펴봤다면 기업의 피해도, ‘규제 철폐’를 위한 시간 낭비도 없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몇 년째 ‘말’뿐인 네거티브 규제

지난달 31일 중소벤처기업부는 오는 2024년부터 2027년까지 특정 산업에 대한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를 적용하는 ‘글로벌 혁신 특구’를 올해 2곳 선정해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혁신 특구는 기존 규제자유특구를 고도화해 특정 산업에 전면적 ‘네거티브 규제(최소 규제)’를 적용하는 지역단위 규제샌드박스 제도다. 혁신 특구 내에서는 명시적으로 열거된 제한 또는 금지사항을 제외한 신기술을 활용한 모든 실증이 가능하다.

실제 주요 선진국 대부분은 이 같은 네거티브 규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기업의 기술적인 도전을 유도하고 혁신성을 고취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 정부 때부터 네거티브 규제 도입을 추진한 바 있다. 실제 2018년 문재인 정부에서 내놓은 ‘신산업·신기술 분야 규제혁신 추진방안’에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출시를 우선 허용하고 이후 필요시 규제하는 ‘포괄적 네거티브’ 방식으로 규제 체계를 전환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하지만 결국 말뿐이었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포지티브 규제(최소 허용 규제)’의 휘하에 놓여 있다. 규제 혁파를 전면에 내세운 현 정부 들어서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정부는 혁신을 방해하는 규제안을 꾸준히 내놓고, 또 꾸준히 철폐하느라 분주하다.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비효율적인 규제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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