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게르 바케’ 벤치마킹한 서울시, 혐오 시설 ‘명소’로 만든다

서울시, 상암동 쓰레기 소각장 기본계획 수립 용역 실시 모티브는 ‘아마게르 바케’, 주민들에게 ‘당근’ 던지는 서울시 ‘상암동 아마게르 바케’, 시민들 일반 인식 바꿀 수 있을까

서울특별시 마포자원회수시설/사진=서울특별시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가 상암동 광역자원회수시설(소각장)에 대한 타당성 조사와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나선다. 유럽 소각장의 처리 방식을 차용해 소각장을 단순한 혐오 시설이 아닌 ‘명소’로 만들겠단 목표다. 소각장 후보지 선정 이후 계속되어 온 주민과의 갈등이 이번 기회에 해결될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

서울시는 상암동 소재 신규 소각장의 시설과 진입로를 모두 지하에 조성할 방침이다. 이후 지상에는 혁신 디자인을 갖춘 주민 편의시설을 세움으로써 주거지 주변에 혐오 시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님비현상(NIMBY·Not In My Back Yard,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을 줄이겠단 계획이다. 이를 위한 연구 용역은 올해 내로 추진된다. 서울시는 2만1,000㎡ 규모의 소각장 후보지뿐 아니라 인근 하늘·노을·월드컵·난지천공원까지 넓힌 15만㎡ 범위까지 용역에 포함하기로 했다.

유럽 출장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20일(현지 시각) “유럽 소각장의 혁신적인 건축 디자인뿐 아니라 오염물질 배출 방식도 사례를 조사해 (상암 소각장에 맞는) 최적의 기술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아마게르 바케의 상부 공간 개념도/사진=서울특별시

아마게르 바케, ‘혐오 시설’을 ‘관광 명소’로

상암동 자원회수시설 계획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자원회수시설인 ‘아마게르 바케’를 벤치마킹했다. 아마게르 바케는 지난 2017년 3월 운영을 시작해 현재 도시에서 나오는 연간 40만 톤 이상의 폐기물을 처리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수명을 다한 기존 발전소를 대체해 약 15만 가구에 전기와 난방을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아마게르 바케의 명성이 자자한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아마게르 바케는 발전소 지붕 위에 스키장을 개설했다. 아마게르 바케 지붕 스키장엔 눈이 아닌 특수 코팅된 플라스틱 잔디가 사용됐다. 덕분에 사람들은 푸르른 잔디가 깔린 듯한 발전소 지붕 위에서 사계절 스키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스키 슬로프 주변에는 공원과 산책로, 등산로가 마련됐다. 여기에 각종 나무와 덤불이 생기면서 발전소 지붕은 산과 같은 형상을 띄게 됐고, 꼭대기에 전망대와 카페가 들어서며 주민들의 쉴 공간까지 마련됐다. 혐오 시설로 분류되던 쓰레기 소각장을 주변 주민들에게 ‘필요한’ 시설, 나아가 ‘관광 명소’로 만들어낸 것이다.

아마게르 바케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열병합발전소로도 불린다. 아마게르 바케는 각종 필터와 정화 기술을 활용해 최첨단 시설을 구비함으로써 오염물질을 최대한 억제한다. 이 덕에 소각 과정에서 이산화황(SO₂) 배출량을 99.5%,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을 90%가량 줄일 수 있었으며, 특히 이산화탄소(CO₂) 배출은 연간 10만 톤이나 줄였다. 우리나라에선 잘 활용하지 않는 습식 세정설비로 산성가스를 제거하고 올해부턴 연간 50만 톤의 탄소 감축을 목표로 하는 탄소 포집 기술도 시범 운영을 추진 중에 있다. 겉치레만 화려한 시설이 아니라는 소리다.

이미 소각장 있는 상암동, “덤터기 씌우는 것 아니냐”

3년 뒤, 즉 2026년부터 우리나라에서 생활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된다. 때문에 서울시는 1,000톤가량의 쓰레기 처리 용량 추가 확보를 위한 쓰레기 소각장 설치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가 자원회수시설을 상암동에 짓겠다 결정할 당시 상암동 주민들은 이를 극구 반대하며 시위를 벌였다. 주민들은 “이미 소각장이 있는 상암동에 또 소각장을 짓는 건 상암동 주민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이미 상암동엔 750톤 규모의 소각장이 이미 있다. 서울시는 이 옆에 1,000톤 규모의 소각장을 추가로 짓겠다 선언한 것이다. 해당 부지는 폐기물 처리시설로 지정되어 있어 폐기물 처리시설 관련 기반 시설을 지을 때 도시계획시설 결정이 필요하지 않은 데다 시유지인 만큼 별도의 토지 취득 절차도 필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것도 당연한 이야기다. 주변에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온다는데 기꺼이 받아들일 이가 누가 있겠는가? 본고의 기자 또한 집 앞에 소각장이 들어온다 하면 극구 반대할 것이다. 일각에선 “은평 뉴타운이 들어설 때 인근에 소각장을 지었듯 다른 지역도 대규모 택지개발 당시 소각장을 지었다면 문제없었을 일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책 없이 가만히 있다 발등에 불 떨어지니 상암동 주민들에게 덤터기 씌운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마게르 바케’가 주민들 마음 돌릴 수 있을까

서울시가 위와 같은 아마게르 바케식 자원회수시설 설치를 결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주민들의 반발이 사그라들 수 있도록 일종의 ‘당근’을 던진 셈이다. 서울시는 소각장 인근 주민들에게 수영장과 놀이공간 등 주민편익시설을 지어주고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주민 복리 증진에 사용하기로 했다. 앞서 언급했듯 관련 시설은 모두 지하에 짓고 지상은 깔끔하게 단장해 랜드마크로 만든다는 계획도 내놨다.

이번 서울시의 계획은 상암동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는 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서울시가 주민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서울시가 내놓은 대안들은 모두 추상적인 물건에 불과했다. 그저 ‘소각장이지만 나쁘지 않고 좋게 해주겠다’라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어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 같은가. 그러나 이젠 아마게르 바케라는 이상향이 명확히 잡혔다. 서울시 또한 아마게르 바케를 모티브로 혐오 시설의 랜드마크화를 기획하고 있다. 상황이 많이 바뀐 것이다.

최근 ESG(Environment, Social, Governa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E’, 환경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상암동 쓰레기 소각장 갈등을 두고 혹자는 말할지 모른다. 시 차원에서 아무것도 안 해주겠다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 시설 받아들이는 것도 못 하냐고, 이기적인 것 아니냐고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당근을 쥐여준다 한들 쓰레기 처리 시설이 혐오 시설이라는 데에 변함은 없다. 오히려 혐오 시설을 혐오스럽지 않도록 만듦으로써 님비현상을 줄이는 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ESG 정책의 핵심이다. 서울시의 ‘상암동 아마게르 바케’가 혐오 시설에 대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을 바꿀 수 있을지 기대감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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